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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문화유산여행]백범 김구 기념관을 찾아서 2 - 경기신문 2018.04.23
작성자 admin 작성일 2018-04-25


▲ 황금희 궁궐문화원장

 

백범기념관은 효창공원 내에 있다. 효창공원은 원래 정조의 아들인 문효세자의 묘역인 ‘효창원’이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문효세자의 묘소는 서삼릉으로 옮겨지고 ‘효창원’은 ‘효창공원’으로 변경되었다. 해방 후

삼의사 묘역과 임정요인 묘역으로 새롭게 조성하였다. 그래서 지금은 효창공원 하면 백범기념관과

독립운동가들의 묘역이 떠오른다.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 백범기념관과 효창공원에 자리한 독립운동가들을

만나보자.

 

백범 김구 선생의 중국 내 이동경로를 따라 2층 전시관으로 자리를 옮긴다. 2층 전시관은 대한민국임시정부와

임시의정원 신년 축하식 기념사진과 태극기로 시작한다. 기념사진에서 백범 김구 선생을 찾아보지만 평소알고

있던 모습만 가지고는 찾아보기 어렵다. 사진 속 인물들의 이름이 적힌 패널을 보고서야 백범 김구 선생은

맨 앞줄에 자리하고 계심을 확인할 수 있다.

 

이어지는 전시내용은 임시정부에서 활동한 백범 김구 선생의 모습이다. 상하이 교민들을 보호하고 임시정부를

지키며 밀정을 찾아내서 처단하는 업무를 총괄하는 경무국장시절의 김구 선생도 만날 수 있고, 지금의 행정

안전부 장관과 비슷한 내무총장 시절의 김구 선생도 만날 수 있다.

 

독립운동가 나석주 선생이 김구 선생에게 보낸 편지도 눈에 띈다. 안부인사와 더불어 일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세로쓰기로 작성된 편지는 한글과 한자가 반반씩 섞여있다. 1920년에 사용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여권도

있다. 얼핏 보면 요즘 상장처럼 보인다. 여권 옆으로는 민족대표 30인의 명의로 발표한 선언서가 자리해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지한다는 내용과 더불어 완전독립을 위한 투쟁에 뜻을 모은다는 내용이다.

 

백범김구기념관에는 다른 독립 운동가들의 활동도 한 켠을 차지하고 있다. 바로 이봉창 의사와 윤봉길 의사의

활동상이다.이봉창 의사는 경시청 앞에서 일왕에게 폭탄을 투척했는데 그 의거 현장에 대한 지도와 사진이

자리하고 있다. 윤봉길 의사는 일본 수뇌부에게 폭탄을 투척했는데 이 의거로 다리를 절단한 주중공사가 항복

문서에 서명하는 사진과 윤봉길 의거 후 상하이 탈출을 도왔던 미국인 피치 부부의 사진도 눈여겨 볼 만하다.

 

전시관 내에는 충칭의 임시정부 청사도 자리하고 있다. 충칭 청사는 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로 조그마한 모형에

불과하지만 우리나라가 해방을 맞기까지 곳곳에 흩어져 있던 우리 민족의 중심역할을 했던 곳이다.

백범 김구선생은 해방 후 조국의 땅으로 돌아오시는데 이 땅을 떠난지 27년 만이다. 귀국 후 신탁통치를 반대하고,

남북으로 분단된 국가가 아닌 하나의 국가로 통일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지만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결국 1949년

6월 안두희의 흉탄에 맞아 경교장에서 서거하시게 된다. 서거 당시 입으셨던 혈의(血衣)가 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다.

혈의 건너편에는 윤봉길 의사와 바꿔 가졌던 시계와 낙관, 생전에 신으셨던 신발 등이 전시되어 있다. 무척이나

소박한 생활품들이다.

 

2층 전시관에서는 ‘추모 공간’이 자리하고 있다. 한쪽 벽면이 유리창으로 되어 있어 눈앞에 백범 김구 선생의 묘역이

한 눈에 들어온다. 1949년에 서거한 김구 선생의 묘소가 부인 최준례 여사와 합장된 채 자리하고 있다.

전시관을 나와 삼의사묘역으로 향한다. 층층 계단을 올라 만나게 되는 삼의사 묘역은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세 분의 묘와 아직은 그 유해가 모셔지지 않은 안중근 의사의 가묘가 모셔져 있다. 안중근 의사의 가묘는 1946년에

조성되었는데 아직도 그 유해를 모셔오지 못하고 있어 안타까움이 더한다. 잠시 네 분께 묵념을 하고 내려온다.

 

효창공원에는 백범 김구 선생, 삼의사 묘를 비롯해 임정요인의 묘가 모셔져 있다. 봄철 나들이를 계획하고 있다면

 효창공원으로 가보는 것은 어떨까. 남북정상회담이 세계인의 이목을 끌고 있는 요즈음 남북 각각의 정부가 아닌

통일정부를 주장했던 백범 김구 선생이 더욱 그리워지는 날이다.

 

원본출처: 

http://www.kg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5131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