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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독자칼럼] 백범일지 72주년…그는 어떤 아버지였을까 - 매일경제 2019.12.10
작성자 admin 작성일 2019-12-10

아빠가 될 날을 학수고대하는 동료가 있다. 그는 어릴 적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해 본인은 좋은 아빠가 되고 싶다고 한다. 좋은 아빠란 무엇일까? 12월로 출간 72주년이 된 `백범일지`를 다시 손에 들었다. 자신의 삶을 유서 삼아 자식에게 전하고자 하는, 좋은 아빠가 되려는 마음에서 집필한 것이니까. 하지만 겸손함 때문인지, 직접적 조언은 "동서고금의 위인을 스승으로 삼으라"는 정도이다.

 

 

 

백범은 어떤 아버지가 되고자 했을까? 아들 김신 회고록 등에서 그 단서가 보인다. 그는 요즘 이상형으로 보는 스킨십 많은 아버지는 아니었다. 갓난아기 때 이후 열두 살이 된 김신을 처음 만나는 극적 장면에서 "이놈, 많이 컸구나"라고 말할 뿐이었다. 곽낙원 여사 사망 후 김신이 충칭에 있던 백범을 찾았을 때 바쁜 나머지 학교에 돌아가라는 말만 하여 많이 외로웠다고 한다. 그러던 백범과 태어나 첫 겸상을 하던 1947년, 아들은 "이런 날이 다 오는구나"라고 감격한다. 백범은 항일의 리더라는 숙명을 받아들이고, 모범이 되는 아버지의 길을 택한 것 같다. 그래서 생각과 말, 행동이 일치하는 생, 불리해도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위해서 진력하는 삶을 보여준 것이 아닐까. 동료들이 힘들어 떠날 때에도 임시정부를 지켰고 해방 후 남과 북, 둘 다 단독정부를 추진하려는 분위기가 감지될 때에도 통일정부 수립의 대의를 위해 남북연석회의에 참석한다. 해방정국의 혼돈으로 심란했을 때, 백범은 아들에게 애국가 4절 후반부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하세"를 한 번 더 부르자고 했다고 한다. 아들은 무엇을 생각했을까? 시민의 국가 공동체에 대한 책임을 강조하는 케네디 대통령의 취임사만큼 세련된 것은 아니지만, 애국심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절절히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백범도 보통의 아버지였다. 성년이 된 아들에게 술문화를 알려주기도 하고, 결혼 적령기에는 "장가를 안 가냐"고 채근한다. 임신한 며느리에게 몸조리 잘하라며 알뜰히 챙겼지만, 첫 손자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1949년 6월 26일 생을 달리한다. 역사가 고난이었던 그 시절에 동포들에게 월인천강(月印千江·하늘의 달이 천 개의 강에 두루 비친다)이었던 백범이 임시정부를 시작한 지 100주년, 좋은 아버지 모습을 보여줄 기회가 많지 않았지만, 자식에게 모범이 되고자 했던 괜찮은 아버지 백범을 생각해 본다.

[오성익 국토교통부 과장]

 

 


출처 : https://www.mk.co.kr/opinion/contributors/view/2019/12/1030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