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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안중근 의사 집안과 3대째 인연[김문작가]
작성자 admin 작성일 2020-03-24

 

안중근 의사 집안과 3대째 인연 [김문 작가]

김문 작가l승인2020.03.10l수정2020.03.10 10:49  

 

[미디어파인 칼럼=김문 작가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4인과의 인터뷰-백범 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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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안중근도 만났을 테지요.

“안 진사는 눈에 정기가 있어 사람을 누르는 힘이 있고 기상이 뇌락하여 비록 조정의 대관이라도 그와 면대하면 자연 경외하는 마음이 일어날 정도였습니다. 그때 안 진사의 맏아들 중근은 13살로 상투를 짜고 있었는데 머리를 자주색 수건으로 질끈 동이고 돔방총이라는 짧은 총을 메고 날마다 사냥을 일삼고 보기에도 영기가 발발하고 청계동 군사들 중에 사격술이 제일이어서 짐승이나 샌나 그가 겨눈 것은 놓치는 일이 없기로 유명했습니다. 그의 계부 태건과 언제나 사냥을 함께 다니고 있었는데 그들이 잡아오는 노루와 고라니로 군사들을 먹이고 또 한 진사 6형제의 안주를 삼았습니다. 이때 안중근을 본 18년 후 하얼빈에서 국적(國賊) 이토 히로부미에게 권총 3발을 명중시키고 이토를 수행 중인 가와카미 하얼빈 총영사와 모리 미야우지 대신 비서관, 다나카 만철 이사 등에게 부상을 입힌 사격술을 과시하게 된 것을 볼 때 어릴 때부터 익혀온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안중근 의사 집안과의 인연은 그것뿐인가요.

“아닙니다. 1913년 이름을 김구로 바꾸고 독립을 위해 일을 하면서 안중근 의사의 뜻을 기려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안중근 의사의 사촌이며 황해도 신천에서 무관학교의 설립자금을 모집하다가 체포되어 일어난 안악사건의 주도자인 안명근과 교류하였으며,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는 안중근 의사의 친동생 안공근에게 중요한 일을 밑기기도 합니다. 안공근은 나의 곁에서 한인애국단을 조직하는데도 적극 관여하였죠. 단원 모집과 관리, 통신연락, 특무활동 등에 관한 일을 총괄하고, 일제 요인과 친일파 암살을 주관하는 등 친형 안중근의 뜻을 이어 갑니다. 윤봉길 의사가 의거를 하기 전 태극기를 들고 사진을 찍기도 합니다. 당시 일제 밀정의 보고서에서도 ‘안공근은 김구의 참모로서 그의 신임이 가장 두텁고 김구가 범한 불법행동은 대부분 안공근의 보좌에 의해서 된다.’라 할 정도로 김구와 안공근의 관계는 각별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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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정부가 상하이에서 난징으로 옮겼다가, 중일전쟁으로 난징도 위험해져서 충칭으로 이동할 때 안공근을 상하이로 보내어 그곳에 있는 안중근 의사의 부인을 데려오도록 하였으나, 안공근은 나의 어머니인 곽낙원을 우선 모셔옵니다. 나는 다시 안공근을 상하이로 보내어 안중근의 아내를 데려오게 하였으나, 상하이가 이미 일본군에게 점령당하고 전황이 좋지 못하여 안공근은 안타깝게도 자신의 가족만을 데리고 돌아오게 되지요. 안중근 집안과 맺은 인연은 3대까지 이어집니다. 안정근의 딸 미생은 저의 맏며느리가 됐고 안공근의 장남 우생은 광복 이후 대외담당 비서로 나를 보좌했습니다. 우생은 좌우합작과 남북합작의 한복판에서 핵심 참모 역할을 했는데 북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안 진사를 만날 무렵 중국행을 결심하게 된 것으로 압니다.

“맞습니다. 안 진사에 집에서 머무를 때 나이가 50쯤 되보이는 검소한 노인을 만나게 됩니다. 안 진사는 그분을 지극히 공경하여 영접했습니다. 하루는 안 진사가 나를 소개했습니다. 그 분은 고능선이라는 학자로 사람들은 ‘고산림(高山林), 고산림’이라고 불렀습니다. 당시 해서지방에서 유명한 굴지의 학자였습니다. 이후 고능선의 집 사랑에 가서 부족하지만 같이 세상사도 논의를 했습니다. 또한 그분은 ‘주자백선’에 나오는 말을 인용하면서 주로 의리에 대해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청일전쟁을 얘기하면서 ‘지금 조정대신처럼 외세에 영합하지 말고 청국과 서로 연합할 필요가 있네. 청국이 갑오년(1894년) 싸움에 진 원수를 반드시 갚을 테니 적당한 인재가 있으면 청나라에 가서 사정도 조사하고 인물과 연락하여 후일 한 목솔이로 대처하는 것이 절대 필요할 것이네.’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청나라로 떠날 것을 생각하게 됐지요.”(다음편에 계속...)

 

<다음과 같은 자료를 참고 인용했다>
·부덕민, 『백절불국의 김구』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회, 2009)
·김삼운, 『백범 김구 평전』 (시대의 창, 2004) 

·김구, 도진순 주해, 『백범일지』 (돌베개, 2018 개정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