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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제5편] 임정 상하이시대 개막-애국의 시작 상하이
작성자 admin 작성일 2012-07-12

[제5편] 임정 상하이시대 개막-애국의 시작 상하이

(2011. 7.13 뉴스데스크,7.14 뉴스투데이)

 

◀ANC▶ 대전MBC 특별기획 "백범,애국을 말하다" 순섭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19년 중국 상하이에서 처음 세워졌죠.

그런데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요?

또,임시정부는 왜 중국 상하이를 택했는지,고병권 기자가 현지 취재했습니다.

◀END▶

 

중국의 경제 중심도시 상하이.

항.포구를 중심으로 유럽식 건물들이 이국적인 풍경을 이루고 있습니다.

 

1845년부터 영국과 프랑스 등 열강들의 요구로 문호를 개방했던 상하이.

이러다보니 이곳에서는 열강의 힘에 밀려 일본이 제대로 힘을 쓸 수 없었고,

인천이나 신의주와 지리적으로도 가까워 자연스럽게 독립투사들이 배편으로 이곳에 모여들었습니다.

 

1919년 4월 11일, 3.1 독립운동의 여세를 몰아 마침내 애국지사 29명이 상하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을 선언합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국내와 외국에 있던 대부분의 독립운동 세력이 통합된 조직이었습니다.

 

 ◀INT▶ 노지은, 이예림 / 서울 광진구 자양동

"저도 잊고 있었던 나라에 대한 사랑이랄까? 그런게 새록새록 생각나고 힘든 일 했던 분들의 자손이란 게 자랑스럽습니다"

 

그런데, 임시정부가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국호 대한민국은 어떻게 만들어 졌을까요?

 

---------------화면전환---------------------

중국의 국부 손문의 아내 송경령의 유해가 안장된 상하이의 한 공동묘지.

이곳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초석을 닦은 애국지사들의 묘역이기도 했습니다.

임시정부 대통령을 지낸 백암 박은식 선생과 국무총리를 맡았던 신규식 선생.

이들은 1917년 역사적인 대동단결선언을 통해 발상의 전환을 이끌어냅니다.

 

1910년 한일병합 조약은 황제가 공개적으로 주권포기를 표명한 것으로,

국민이 주권을 이어받아야 한다며 국민이 나라의 주인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이 사상을 계승한 임시정부는 1897년 이래 군주가 통치했던 대한제국을 국민이 주권을 행사하는 대한민국으로 부른 것입니다.

 

◀INT▶ 한시준 교수 / 단국대학교 역사학과

"우리나라 5천년의 역사에서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제일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 1919년 부터이지요. 해방되고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할 때도 1919년 사용했던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그대로 계승해서 사용했습니다."

 

처음으로 국민에게 주권을 부여한 대한민국 임시정부,비록 이국 땅에서,

그마저도 한곳에 안착하지 못했지만 27년동안 파란만장한 독립투쟁의 길을 걷게 됩니다.

 

중국 상하이에서 mbc뉴스 고병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