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김구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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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백범사진전 설명] 15. 자싱 피신생활을 도와 준 중국인과 임시
작성자 admin 작성일 2012-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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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임시정부 활동(1932~1939)

<자싱 피신생활을 도와 준 중국인과 임시정부 가족들 (1935)>

 

 

백범 김구 선생은 1932년 이봉창 윤봉길 의거로 더 이상 상하이에 머물지 못하게 되자, 중국인 추푸청(?補成)의 도움을 받아 자싱(嘉興)으로 피신하고 광둥(廣東)출신 중국인으로 행세하며 생활하였다. 백범 김구 선생은 피신생활을 위해 임시정부에서 잠시 물러나 있으면서도 임시정부의 조직정비와 독립운동 세력의 통합, 독립군 양성을 위하여 노력하였다. 1933년 5월 난징(南京)에서 중국 국민당정부 장제스(蔣介石)를 만나 한인청년을 군사간부로 양성하는데 합의하고, 중국 중앙육군군관학교 뤄양분교(洛陽分校)에 한인특별반을 설치하였다. 또한 난징의 중앙육군군관학교에 한인청년을 파견하여 군사간부로 육성하고, 이를 중심으로 한국특무대독립군을 조직하였다. 이들은 1940년 창설된 한국광복군의 주요 인적자원이 되었다.

독립운동단체의 분열이 일어나면서 임시정부가 존폐위기에 닥치자, 백범은 1935년 이동녕 등과 자싱 난후(南湖)의 선상에서 국무회의를 소집하고, 임시정부를 개편하였다. 또한 임시정부를 옹호할 여당조직으로서 한국국민당(韓國國民黨)을 결성하는 등 임시정부의 지도체제를 강화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