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80년] ④ 마침내 이뤄진 김구의 소원…''높은 문화의 힘'' 키운 한국 - 연합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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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8-14
백범 김구 추모식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이태수 김경윤 박원희 기자 =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김구 ''''''''백범일지'''''''' 중 ''''''''나의 소원''''''''에서)
한반도가 일제 강점을 벗어나 이념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있던 1947년 김구(1876∼1949) 선생이 원한 조국은 부유한 나라도, 무력(武力)이 뛰어난 나라도 아니었다. 빈곤과 혼돈 속에서 백범이 꿈꾼 것은 다름 아닌 문화 강국이었다.
하지만 광복의 기쁨을 누릴 새도 없이 조국은 분단됐고 전쟁이 엄습하면서 그 소망은 당장 실현되지 않았다. 이후 한국인들은 빈곤과 굶주림에서 벗어나려 허리띠를 졸라맸고 민주주의를 위해 독재 정권에 맞서야 했다.
광복 80주년을 맞은 오늘날 방탄소년단(BTS)과 블랙핑크 등 K팝 가수들은 세계 양대 차트를 휩쓸고 있고, ''''''''오징어게임''''''''과 ''''''''기생충''''''''은 세계인을 열광시켰다. 한강이 아시아 여성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는 등 K컬처는 80년 전에는 상상하지 못한 존재감을 드러내며 한국을 문화 콘텐츠 강국으로 도약시켰다.
K팝·드라마·영화 등 슈퍼 IP 배출…문화 수출국으로 거듭나
한국이 성취한 ''''''''높은 문화의 힘''''''''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K팝과 K드라마다. 유튜브, 넷플릭스, 스포티파이에 접속해 세계 어디서나 K콘텐츠에 몰입하는 시대가 됐다.
2000년대 초반 중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한류 열풍이 점화한 이후 음악, 드라마, 영화 등 각 분야에서 ''''''''킬러 콘텐츠''''''''가 배출되면서 한국 대중문화는 아시아를 넘어 세계적인 현상이 됐다.
BTS는 ''''''''꿈의 차트''''''''로 불리는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 ''''''''핫 100''''''''에서 6곡을 1위에 올렸고, 미국 주요 대중음악 시상식에서 잇따라 수상하며 K팝을 글로벌 음악 시장의 한 장르로 안착시켰다.
블랙핑크, 스트레이 키즈, 에이티즈 등 K팝 후배들이 해외를 무대로 활약하며 대규모 월드투어도 성황리에 열었다.
''''''''빌보드 뮤직 어워즈'''''''',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 ''''''''MTV 유럽 뮤직 어워즈''''''''(MTV EMA) 등 미국과 유럽의 주요 시상식에서 K팝 부문이 신설된 것은 한국 대중음악의 달라진 위상을 실감케 한다.
K드라마도 새로운 장르로 자리매김했다. ''''''''오징어 게임''''''''은 넷플릭스에서 지금까지 공개된 영화·쇼 가운데 가장 높은 시청 수(총 시청 시간을 러닝타임으로 나눈 값)를 기록했다. 비영어권 작품 최초로 에미상에서 작품상 등 6관왕을 달성했고, 미국배우조합(SAG) 시상식에선 이정재·정호연이 TV 드라마 부문 남녀주연상을 받았다.
영화계에서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한국 영화 최초로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았고,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비영어 영화 최초로 작품상을 받아 화제가 됐다.
이제는 한국 문화가 해외 제작자에게 영감을 주는 사례도 등장했다. 미국 소니픽처스가 제작한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K팝을 소재로 팬덤 문화와 한국적인 요소를 녹여내 ''''''''슈퍼 지식재산권(IP)''''''''이 됐다.
웹툰은 한국이 종주국이다. 네이버웹툰은 본사를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 두고 북미, 일본, 동남아를 공략하고 있으며, 카카오 산하의 카카오엔터와 카카오픽코마는 각각 미국과 일본에서 플랫폼을 운영 중이다. 1990년대 일본 만화 해적판이 유통됐던 한국은 세계 만화시장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
20세기 중후반 제조업을 중심으로 산업을 육성해 ''''''''한강의 기적''''''''으로 세계를 놀라게 한 한국이 21세기에는 문화 콘텐츠 수출국으로 거듭난 것이다.
한강·임윤찬에 ''''''''어쩌면 해피엔딩''''''''까지…K컬처 위상 드높여
한국 문화의 위상을 드높인 상징적인 경사는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이다. 그는 맨부커상(현 부커상)에 이어 아시아 여성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으며 세계에 K문학을 각인시켰다.
한강은 한국 문학의 취약점으로 꼽힌 번역 문제를 극복하고 ''''''''한글로 쓴 문학도 충분히 세계인의 공감을 얻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시켜줬다.
한강이 홀로 뛴 것은 아니다. 김혜순 시인은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을 비롯해 캐나다, 스웨덴, 독일 문학상을 받았고 미국 예술·과학 아카데미(AAAS) 외국 명예 회원으로도 선출됐다. 소설가 정보라는 영국 부커상, 전미도서상, 미국 필립 K. 딕 상 후보에 잇달아 올라 세계적으로 주목받았다.
지구촌 곳곳에서 한국어 열풍도 불고 있다. 해외 한국어 보급 기관은 2천여개이며 수강생은 25만여명에 이른다. 한글은 이제 ''''''''힙''''''''한 문자가 됐다. 2024년 기준 한국어를 제2외국어로 채택한 국가는 24개국에 달한다.
클래식·뮤지컬·발레 등 서구에서 시작한 예술 분야에서도 한국 작품과 예술가·창작자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한국 창작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은 올해 미국 토니상 시상식에서 작품상 등 6개 부문을 석권하며 새 역사를 썼다. 박천휴 작가는 한국인 최초로 극본상과 작사·작곡상을 받았다. 1997년 ''''''''명성황후''''''''가 한국 창작 뮤지컬 최초로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공연한 지 28년 만의 쾌거다. ''''''''위대한 개츠비''''''''와 ''''''''마리 퀴리''''''''도 브로드웨이와 영국 웨스트엔드에서 공연하는 등 K뮤지컬이 본고장 관객을 매료하는 단계로 성장했다.
이종규 한국뮤지컬협회 이사장은 "한국 문화콘텐츠 산업 전반의 수준이 올라온 만큼 노래, 음악, 연기 등이 고도로 결합한 뮤지컬도 빠른 속도로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했다"고 설명했다.
클래식 음악계에서도 세계적인 아티스트가 연이어 배출됐다. 1965년 레번트리트 콩쿠르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 한동일을 시작으로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피아니스트 정명훈 등이 해외 콩쿠르에서 입상했다.
쇼팽 콩쿠르 우승자 피아니스트 조성진, 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자 피아니스트 임윤찬을 비롯해 유명 콩쿠르를 휩쓰는 국내 연주자들을 이전보다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발레 분야에서도 파리오페라발레단의 박세은, 마린스키발레단의 김기민·전민철,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의 서희, 영국 왕립 발레단 로열 발레의 최유희·전준혁 등 해외 유수 발레단에서 한국 무용수들이 활약하고 있다.
K컬처의 국제적 위상을 높인 사례가 축적되면서 한국은 백범이 꿈꿨던 ''''''''높은 문화의 힘''''''''을 지닌 국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영국의 글로벌 브랜드 평가기관인 ''''''''브랜드 파이낸스''''''''가 2월 발표한 ''''''''2025 글로벌 소프트 파워 지수''''''''에 따르면 한국은 스페인, 호주 등을 제치고 작년보다 세 계단 오른 12위를 기록했다.
브랜드 파이낸스는 "K팝, 영화, TV 쇼의 세계적인 성공은 예술, 엔터테인먼트, 미디어 분야에서 한국의 점수를 높이며 국제적 위상을 강화했다"고 소개했다.
이규탁 조지메이슨대학교 한국캠퍼스 국제학과 교수는 "K컬처는 단순히 수출로 얼마를 벌어들였다는 수준을 넘어 전 세계인이 함께 즐기고 공유하는 위치에 올라섰다"고 분석했다.
그는 "K컬처는 이제 전 세계인이 함께 이야기하는 소통 수단이 됐다"며 "지금과 같은 흐름이 쉽게 꺾이지 않고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오래 이어지리라 본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