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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윤주경 독립기념관장]“도시락 폭탄보다 중요한 것”-머니투데이 2016.6.2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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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admin | 작성일 | 2016-06-23 |
[윤주경 독립기념관장]“도시락 폭탄보다 중요한 것” 나라 사랑은 역사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 독립기념관이 앞장 머니투데이 2016.6.22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6월 6일 현충일은 순국선열을 추모하는 날이며, 6월 25일은 우리나라 아픔의 역사인 한국전쟁이 발발한 날이다. 과거 일제시대에 빼앗긴 나라를 찾기 위해 몸 바쳐 싸운 독립운동가들, 다시 찾은 나라를 끝까지 지키기 위해 전장으로 나갔던 6·25참전용사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우리는 없었을거란 사실을 우린 기억해야 한다.
▲ 1975년 제20회 현충일에 게양된 태극기 앞에서 시민들이 묵념하는 모습(국가기록원제공)
이달의 기관장 초대석 주인공은 윤주경 독립기념관장이다. 윤 관장은 ‘도시락 폭탄’의 영웅으로 국민들이 잘 알고 있는 매헌 윤봉길 의사의 장손녀이다. 윤봉길 의사에 대해 우리 후손들이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 라는 질문에 윤 관장은 “자신의 몸을 움직여 제국주의 식민지배라는 거대한 시대의 흐름을 바꾸어 후세가 살아가는 세계는 이상이 꽃피는 세상으로 움직이게 하려 했던 ‘영원한 청년’으로 기억되기를 바란다.“라고 답했다. 그리고 그 또한 독립운동가들의 뜻과 업적에 감사하고, 누구보다 앞장서서 자랑스러운 역사를 알리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한창 진행 중이다. 우리나라의 뿌리에 대해 더 많이, 바르게 이해하여 국제 경쟁력을 갖춘 능력 있는 인재들을 많이 배출하고자 함이 편찬의 의의다. 제2의 안중근, 윤봉길 의사를 미래에 다시 만날 수 있는 기대를 가져본다.
독립기념관에서 6월에 준비하고 있는 특별전시가 있는지? 세 차례에 걸쳐 전시한다. 특히 독립운동가 손병희 선생의 종손자인 김원상 기증자가 보내주신 자료도 전시된다. 손병희 선생이 세운 봉황각(鳳凰閣)에 기증자가 거주하며 보관하고 있던 도자기와 그림들을 미국으로 이주하면서 일괄 기증한 것이다. 또, 조선후기 문서부터 대한민국 초기의 포스터까지 시공간을 초월한 다양한 기증 자료들을 만나볼 수 있다. 베를린올림픽 80주년을 계기로 한국 근대스포츠의 발전을 돌아보는 특별전시가 예정 되어있다.
우리가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할 호국인물을 꼽는다면? 호국인물이라 할 수 없다. 한국의 독립운동은 한민족이라면 나라 밖에서 생존을 위해 어렵게 살아가야 했던 교민들까지도 일제의 식민지민이 되기를 거부하며 독립항쟁을 멈추지 않았다. 이러한 우리 국민들이 있었기에 나라가 지켜졌다고 생각한다.
윤주경 관장은 일본 수뇌부를 향해 폭탄을 던진 국민 영웅인 ‘매헌 윤봉길 의사’의 손녀다. 독립운동가의 후손으로서 기대와 요구가 많았을 것 같은데? 훌륭하신 분이다. 그러니 너는 할아버지의 이름은 빛내지 못할지 언정 할아버지의 명예를 어지럽히지는 말아야 한다.”는 말씀이었다. 솔직히 의사가 무슨 말인지도 잘 모르고 해서 골목에 나가 “우리 할아버지는 의사인데 병 고치는 의사가 아니래요”라고 말을 했다. 그러자 동네 아주머니께서 정색을 하시면서 “너는 너 하나가 아니야. 너의 말 한마디, 몸가짐 하나가 모두 너의 부모님과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자랑이 될 수도 있고 부끄러움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오늘같이 말을 가볍게 하면 안돼.” 라고 하셨다. 가르쳐주어 잊을 수 없는 깨달음으로 남아 있다. 또한 나에 대해 보통의 개구쟁이들과는 다른 기대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른 사람이 다 그래도 너는 그러면 안돼.”라고 하셨다. 모두가 편리하기 위해 규칙을 어길지라도 윤봉길 의사의 손녀이기 때문에 나에게는 허용이 안 된다는 말에서 나는 다른 아이들과는 다른 기준을 요구 받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불편하고 싶지 않아 뒤로 숨으려 했던 것 같다. 이름을 남기신 분들과 수많은 이름조차도 기억 못하는 선열들의 헌신 위에 꽃 피었다는 것을 느꼈다. 또 그분들에게는 ‘나의 헌신이 헛되지 않을 것이고, 앞서간 동지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 해야 한다.’는 믿음이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만일 우리가 광복을 맞이하지 못했다면 내가 윤봉길의사의 손녀로서 자랑스럽게 살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감사를 드리게 되고 관심을 갖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 후로 독립운동가들과 관련된 행사에 힘닿는 한 참여해 왔다. 노력하며 살아왔고 이런 노력이 나를 때로는 속박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불편하기도 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오히려 나를 다듬어주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감사하게 된다.
윤봉길 의사가 국민들과 앞으로 후손들에게 어떤 인물로 기억되어야 할까? 하지만 윤봉길 의사는 자신이 살고 있던 시대를 진심을 다해 숙고하고 식민 지배를 극복하기위해 몸과 마음을 다해 노력했다. 그러나 제국주의의 퇴치가 있어야만 이상이 꽃피울 수 있는 세상이 올 수 있다는 것을 자신이 살아낸 삶을 통해 깨닫고 깨달은 대로 행동한 ‘영원한 청년’이다. “세상을 움직이려거든 내 몸을 움직여라.” 가 있다. 윤봉길 의사는 이 격언을 24년의 짧은 생애를 통해 살아내고 가르쳤다. 즉 일본의 식민 지배를 극복하기 위해 자신이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다음 세대에게는 어떤 세상을 물려줘야 하는지를 깊이 숙고했다. 그래서 농촌이 무지에서 깨어나게 하기 위해 야학을 열었고,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양돈, 양잠, 고구마 심기 등과 같은 소득증대사업 등 농촌계몽운동에 전념했다. 청년들과는 월진회를 만들어 서로가 농촌의 지도자로 성장하려 했다. 하지만 현실은 더욱 피폐해갈 뿐이었다.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야 다음 세대에게 이상의 꽃을 피울 수 있는 자유롭고 정의로운 세상을 물려줄 수 있다고 깨닫고 “장부가 뜻을 세워 집을 나가면 그 뜻을 이루기 전에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글을 남기고 상해 임시정부를 향해 집을 떠났던 것이다. 더 강의한 사랑을 위해…
최근 독립운동사 교육의 중요성을 많이 느낀다고 했는데,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바른 역사 교육, 어떻게 해야 할까? ▶한국의 근·현대사는 많은 우여곡절과 시련의 시기였기에 자국 역사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기 쉬운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개인의 삶을 되돌아보면 일평생 살면서 누구나 많은 역경을 겪게 된다. 역경에 부딪쳤을 때 누구나 좌절하지만, 그 역경을 극복하고 나면 자신이 매우 강해졌다는 것을 느끼고 스스로 대견하게 생각되는 법이다. 역사의 시련도 그것을 극복했을 때 민족을 단련시킨다고 생각한다. 청소년들은 시련으로 점철되어 있는 한국 근·현대사에 대해 실망하거나 좌절하기 보다는 한국민들은 넘어질 때마다 다시 일어나서 시련을 극복해 나간 점에 자부심을 느꼈으면 좋겠다. 시련의 역사이지만 이를 극복한 한국의 역사에 대해 자부심을 느꼈으면 한다. 지침서가 될 것이다. 또한 정보화 시대에 부응한 DB시스템 구축과 웹서비스를 통해 독립운동의 대중화에 기여하고 한국독립운동의 가치를 세계에 알리게 될 것이다. 그러니 청소년들은 암기할 것이 많은 역사과목을 싫어하게 마련이다. 따라서 역사교육은 학습하는 청소년 개인의 삶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도록 교육하는 것이 필요하다. 독립운동가 개인의 삶에 대한 스토리텔링을 통해, 시대가 규정하는 요인과 개인의 삶의 과정에서 어떠한 마음으로 현실에 부응하며 어떠한 길을 선택해 나갔는지를 교육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학습자 자신은 과거 사람들의 삶을 통해 자신의 삶을 비추어 볼 수 있고, 삶을 어떻게 운영해 나가야 하는지에 대해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현재 가장 중점적으로 추진하는 업무는 무엇이고, 추진배경은 무엇인가? 수립 100주년을 기해 1만 6천여 명의 독립운동가들의 생애를 60권의 책에 담아 완간할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인명사전 편찬사업의 총 예산은 약 62억 정도가 투입될 예정이다. 인명사전 편찬사업에는 근·현대사 전공의 학자들이 다수 참여하여 원고의 집필과 검수, 전문적 감수까지 철저히 거치게 하여 완성도를 높일 예정이다. 그러나 독립기념관이 발간하는 독립운동가인명사전은 학계에 축적된 연구기반 위에서 독립운동가의 성장 배경과 교육, 사상 및 독립운동 업적 등 전 생애를 종합적으로 정리, 인명 사전형식으로 편찬하게 됨으로써 공훈록과는 확실한 차별성을 가지게 된다. 애국심을 고취하고 독립정신과 세계평화의 소중함을 알리는 계기를 마련하게 될 것이다. 후세 교육의 지침서가 될 것이다. 또한 정보화 시대에 부응한 DB시스템 구축과 웹서비스를 통해 독립운동의 대중화에 기여하고 한국독립운동의 가치를 세계에 알리게 될 것이다.?
독도 교육 활성화 역시 독립운동사 교육만큼 중요한 의제다. 독립기념관이 독도 교육에서 하고자 하는 역할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것은 우리나라 침략에 대해 근본적으로 반성하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독립기념관은 일본의 영유권 주장을 일제침략 잔재라고 인식하고, 우리 땅 독도에 대한 영토의식을 전 국민이 함양할 수 있도록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독립기념관은 독도교육을 통해 국민들이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선열에게 감사하고 궁극적으로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매월 국가보훈처와 함께 해당월의 독립운동가를 선정하고 있다. 6월의 독립운동가는 누구인지? 안승우 선생은 제천의병의 중군장으로 활약했던 의병장이다. 유인석을 의병장으로 추대했다. 이후 제천의병은 약 5개월 동안 충주성을 점령하는 등 크고 작은 전투 속에서 상당한 전과를 거두었다. 현재의 제천시 남산에 진을 치고 관군과 일본군에 맞서 최후 격전을 벌였다. 하지만 전투가 한창 진행되던 중 갑자기 내린 비로 인하여 의병들이 가지고 있던 화승총을 쓸 수 없게 된다. 결국 이 전투에 패하게 되고, 안승우 선생은 오른쪽 다리에 탄환을 맞고 붙잡히고 말았다. 그러나 선생은 붙잡힌 상황에서도 강개한 어조로 우국충정의 소신을 당당히 밝히다가, 32세의 나이로 순국하였다.
내년에 독립기념관 개관 30주년이 된다. 앞으로 독립기념관을 어떤 곳으로 만들고 싶으신지? 30주년이 되는 독립기념관은 이러한 건립 목적에 더욱 충실하여 국내는 물론 국외까지 인정받는 한국독립운동의 전문기관으로 거듭나고자 한다. 그래서 어떤 역사 기관도 갖추지 못한 7개의 전시관과 잘 갖추어진 자료 수장고, 훌륭한 교육시설 등을 잘 활용하여 국민이 믿고 찾아오는 그런 전문 역사기관이 되도록 노력하겠다. 3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과거 심어놓았던 수많은 조경과 조림들이 이제는 관광명소가 될 만큼 잘 자라서 독립기념관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즐거움과 편안한 휴식처를 제공하게 되었다. 이런 훌륭한 자연 조건을 독립기년관의 건립 목적과 잘 접목시켜 어느 때든지 수시로 찾아와 관람하며 휴식할 수 있는 그런 국제적인 명소로 만들고 싶다. 이처럼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더불어 독립정신의 소중함과 인류사회가 지켜나가야 할 정의가 무엇인지를 생각해보는 장소가 되었으면 한다. 그리하여 미래의 나와 나의 가족, 그리고 우리 사회와 국가, 그리고 더 나아가 인류사회가 지향해 나가야 할 방향이 무엇인지를 성찰할 수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국민의 전당이 되었으면 한다.
대한민국 독립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지금까지 눈부신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나라를 사랑하는 국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강화는 우리에게 직접 영향을 미치고 있는 실정이다. 역사는 현재의 거울이자 미래의 지침서다. 나라 사랑의 길은 역사에 대한 진지한 관심에서 출발한다고 본다. 더 많이 알고 이해할 수 있었으면 한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정신력이 강한 국제 경쟁력을 갖춘 능력 있는 인재들이 많이 배출되어야 한다. 사익에 연연하여 공동체를 무너뜨려 마침내 멸망에 이르는 역사가 아닌, 공익을 위해 헌신하여 공동체를 살려 함께 번영하는 인류사회의 모범국가로 성장해 나가야 한다.
△ 윤주경 독립기념관 관장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6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