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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김구 옥살이 감옥 도면 공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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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admin | 작성일 | 2016-08-11 |
[김구 옥살이 감옥 도면 공개] "백범일지에 묘사된 흔적 보완에 도움" 국가기록원 소장 인천감리서 증축 도면 발견 인천일보 2016.8.11
▲ 인천감리서 감옥 도면 일부. 맨 위 도면의 점선이 백범 김구가 옥살이했던 구 감옥, 실선은 증축된 부분. 가운데 도면은 감옥이 4칸으로 늘어나는 증축 뒤, 맨 아래 도면은 3칸이었던 증축 전 모습을 각각 그린 것이다. /자료제공=국가기록원
▲ 전북 고창읍성에 복원된 감옥 전경. 인천감리서 감옥과 비슷한 형태여서 당시의 모습을 유추해볼 수 있다. /사진제공=문화재청
"감옥은 내리(지금의 내동)에 있었는데 내리 마루에 감리서가 있고, 왼편에는 경무청이 있고 오른편에 순검청이 있었다. 감옥 주위에는 담장을 높이 쌓아올렸고, 담 안에는 평옥(平屋) 몇 칸이 있는데…." 일본인 무장 조직원을 살해했다. 통상 업무를 맡던 인천감리서에는 외국인 관련 사건을 다루는 개항장재판소와 감옥이 있었다. 객주에서 일하며 옥바라지를 했다. 김구는 1946년 전국을 순회하며 인천을 처음 찾아 "면회차 부모님이 내왕하시던 길에는 눈물 흔적이 남아 있는 듯 49년 전 옛날 기억도 새로워 감개무량했다"고 떠올렸다. 인천으로 이감되면서다. 김구는 "옥문 안에 들어서며 살펴보니 새로이 감방을 증축했으나 옛날에 내가 글 읽던 방과 산보하던 뜰은 그대로 있었다"고 회고했다. 다만 감옥은 그 자리에 남아 1909년 ''''경성감옥 인천분감''''으로 바뀌었다. 그때부터 김구가 다시 돌아온 사이 감옥의 신축과 증축이 이뤄진 것이다. 당초 3칸이던 감방은 10칸까지 늘어났다. 일제가 인천항 축항 공사 강제노역에 동원하려 한 것"이라며 "1898년 탈옥했다가 16년 만에 인천 감옥으로 돌아온 김구의 옥살이 흔적이 이번에 찾아낸 도면에 모두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증축 도면은 국가기록원에 소장돼 있었다. 다만 김구가 갇혀 있던 장소라는 연결고리가 밝혀지지 않았던 것이다. 체적 상관관계가 드러나지 않았다"며 "이번 자료를 통해 역사를 깊고 넓게 봐야 인천의 가치재창조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