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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그날의 흔적을 찾아서] 길 위의 임시정부, 가흥·해염·항주 등 독립운동 현장을 따라가다- 항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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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admin | 작성일 | 2019-11-04 |
항주에 설치된 대한민국임시정부 상해 홍구공원 의거 이후 대한민국임시정부는 근거지를 항주로 옮겼다. 김구를 비롯한 일부 임정요인과 가족들은 가흥으로 이동했다. 취재탐방단은 항주 시기의 첫 임정 청사였던 청태 제2여사를 찾았다. 1910년 무렵 신태여관이라는 이름으로 운영되고 있다가 청태 제2여사로 바뀐 것으로 1967년 군영반점으로 다시 이름이 바뀌었다. 청태 제2여사는 상하이를 떠나 처음으로 타지에 둥지를 틀었던 임시정부 청사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른 곳이다. 임정의 군무장(지금의 국방부장관) 이었던 김철 선생이 미리 와서 머물고 있었기 때문에 임정의 청사로 사용된 것이다. 지금도 옛 여관의 기능은 그대로다. 군데군데 외관이 훼손되기는 했지만, 내부의 시설들을 단장해서 깔끔한 인상을 준다. 항주에 가면 이곳에서 하룻밤 머물러 옛일을 추체험해보는 것은 어떨까? 인근에 한국독립당 당사가 있던 사흠방과 학사로 임정가족 거주지가 있다. 중국인이 거주하는 공간이지만, 입구에 표석들을 세워 관리하고 있다. 항주 임시정부 관련 유적은 근래 새롭게 단장하여 임정 100주년의 의미를 더 해주고 있다. 청태 제2여사에서 호변촌 청사로 이동한 시기는 명확하지 않지만, 중국 정부의 지원으로 호변촌 장생로 청사로 이동하여 새 둥지를 틀었다. 항주시기 임시정부 자료를 전시하고 있는 호변촌 임시정부 청사(호변촌 23호, 현재 장생로 55호) 구역은 청태 제2여사와 약 1km가량 떨어져 있다. 호변촌은 항주를 대표하는 명소인 서호(西湖)의 옆 장생로 변에 위치한다. 호변촌 청사는 현재 ‘대한민국임시정부항주유적지기념관’으로 복원, 관리되고 있다. 옛 청사 터에 중국 주민들이 살았으나, 항주시 정부와 한국 독립기념관이 노력하여 2007년에 개관하고 2012년에 보완하여 재개관하였다. 1층엔 응접실과 영상물 상영실이 있고, 2층엔 요인 집무실, 침실, 전시자료관이 배치되어 있다. 항주시기 임시정부 활동뿐만 아니라 임시정부 이동 시기 전반에 대한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2014년에 중국 정부는 항일전쟁 및 반파시즘 전쟁 승리를 기념하는 ‘국가급 항전 기념시설 및 유적지’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다. 호변촌 청사는 1932년 5월부터 1935년 11월까지 약 3년 반 동안 사용했다. 이곳 시절 임정 요인과 가족들은 오랜 역사와 문화가 서려 있는 항주 서호(西湖)에 나가 여가를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항주 독립운동사적지 중에 가장 오랜 기간 머물면서 활동했던 곳으로 해외 독립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 홍구공원 의거 이후 임정의 근거지를 옮겨야 했지만, 독립운동에 대한 관심과 지원도 있었다. 1933년 5월에 김구와 장개석의 만남이 성사되었고, 1934년에 한중합작 군사양성 결정이 있었고, 1935년 가흥 남호에서는 임정요인들의 선상회의가 있었다. 그러나 임정 내부의 노선 차이로 분산된 독립진영의 모습도 드러났다. 부침의 시작이었다. 임시정부는 또다시 진강(鎭江)으로 이동하하였고, 남경(南京)을 오가며 활동했다. 신춘호 방송대학TV 촬영감독·문화콘텐츠학 박사 사진=신춘호박사 출처 : 중부일보(http://www.joongboo.com) http://www.joongboo.com/news/articleView.html?idxno=36337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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