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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지도자로서의 책임감과 사명감의 무게를 들고 가장 앞에서 뛴 사람은? - 경기도포털 2019.11.1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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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admin | 작성일 | 2019-11-19 |
지도자로서의 책임감과 사명감의 무게를 들고 가장 앞에서 뛴 사람은?응답하라 1919 경기도 중학생 역사원정대의 100년 전 시간여행, 세 번째 기록경기도 청소년기자단 양나래 기자 didskfo9744@naver.com 2019.11.15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의 역사로 남게 된 대한민국 임시정부. 그리고 그 시대를 느끼기 위해 떠난 ‘응답하라 1919 경기도 중학생 역사원정대’. 역사원정대는 우리의 역사를 중국 상해에 남기고 왔다. 용인지역 중학교 2학년 학생들과 경기도 청소년기자단이 함께한 역사원정대 셋째 날의 역사는? 3박 4일의 기간 중 2일이 전광석화처럼 지나가고 셋째 날이 찾아왔다. 셋째 날의 일정은 상해에서 시작해 가흥, 해염을 거쳐 항주가 최종 목적지인 만큼 이동 시간이 길었다. 역사원정대는 호텔 조식을 먹고 가흥으로 출발했다. 가흥에 도착해 방문한 곳은 김구 피난처인 매만교였고 해염으로 이동해 또 다른 김구 피난처인 재청별장도 방문했다. 김구 선생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김구가 일제의 감시망을 피해 가흥으로 피신할 무렵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도 이주를 시작했다. 그 후 김구 선생을 중심으로 가흥에서 독립운동이 전개되면서 가흥이 독립운동의 주요 활동지역이 됐다. ? 원정대는 매만교 입구에서 가이드를 통해 유적지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 양나래 기자
응답하라 1919 경기도 중학생 역사원정대 학생들은 매만교의 입구에서 현지 가이드의 간단한 설명과 소개를 듣고 유적지를 탐방했다. 평생 나라를 위해 독립운동을 하다 순국한 김구가 독립운동 전개를 위해 피신 다녔던 피신처를 기념관으로써 기리고자 매만교와 일휘교에 김구의 삶에 대한 자료를 전시해 놓았다. 김구 선생은 <백범일지>에 “가흥은 산은 없으나 호수가 있고, 물산이 풍부하고 인심이 상해와는 딴판이며, 상점은 값을 속여 받지 않는다”고 기술하기도 하며 가흥에서의 생활에 대한 회상을 했다.
왼쪽이 위급 상황이 발생할 시 김구가 대피했던 통로, 오른쪽은 김구가 생활했던 침대의 모습이다. ⓒ 양나래 기자
?김구 피난처인 재청별장을 방문한 원정대. ⓒ 양나래 기자 매만교 탐방을 마친 역사원정대는 해염으로 넘어가 점심을 먹었다. 기자는 점심을 먹으며 김구가 독립운동가들의 의거가 있을 때마다 손수 밥을 지어 챙겨줬다는 일화가 생각나 밥이 목으로 넘어가질 않았다. 식사 후 원정대는 김구의 또 다른 피난처, 재청별장으로 이동했다. 1932년 4월 윤봉길의 훙커우 공원 의거 이후 일제는 의거 주도자로 김구 선생을 지명하고 당시 거금인 현상금 60만 원을 걸었다. 김구는 김의한과 함께 자싱으로 피신했지만 좁혀오는 수사망에 주푸청의 임신한 며느리 주자루이의 도움을 받아 재청별장으로 옮겨왔다. 재청별장에서 김구는 한인과 중국 주민들로부터 도움을 받으며 반년 동안 생활했다. ?재청별장의 입구 모습. 한자로 크게 재청별장이라고 쓰여 있다. ⓒ 양나래 기자 재청별장 앞에 세워진 비석. 김구의 아들 김신 장군이 세웠다. ⓒ 양나래 기자 셋째 날은 김구 선생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을 주로 방문했다. 기자는 김구 선생이 안중근 의사나 윤봉길 의사와 같이 의거한 인물이 아닌데 어떻게 독립운동가들을 대표하는 인물이 된 것인지 의문이 있었다. 그러나 매만교와 재청별장을 견학하며 김구 선생의 지도자로서의 사명감을 봤다. 독립운동가들의 지도자가 일제에 의해 잡힌다면 대한민국 독립운동가들의 운명은 끝이었을지도 모른다. 지도자로서의 김구가 독립운동을 주도하고 활발하게 전개해 나가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지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 독립운동가의 지도자가 김구 선생이었기에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하기 전과 후 모두 독립운동이 체계적으로 전개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며 다시 한번 지도자의 부담과 무게가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도자로서의 책임감과 사명감의 무게를 들고 가장 앞에서 뛴 사람은? 아마 김구 선생이지 않았을까 싶다.
출처 : https://gnews.gg.go.kr/news/news_detail.do?number=201911150203481545C0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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