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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인터뷰… 공감]20여년간 향토역사 발굴 ''외길'' 강덕우 인천 개항장연구소 대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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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admin | 작성일 | 2019-12-11 |
"인천·백범이야기 복원이 독립운동 100년 맞은 우리의 과제" 김민재기자
인천서 옥살이 청년 김창수에서 ''김구'' 변화 계기 의미심장한 곳
백범 김구가 인천을 의미심장한 역사지대라고 부른 이유는 그가 청년 김창수에서 독립운동의 주역 김구로 다시 태어난 계기가 됐던 곳이기 때문이다.
백범은 인천에서 두 번이나 옥살이를 하며 죽을 고비를 넘겼다. 인천에서의 담금질로 그의 삶은 더 단단해졌고, 중국에서 임시정부를 이끌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독립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은 올해 인천의 역사학계도 백범 김구의 인천 행적과 발자국을 쫓아 의미를 알리는 일에 나섰다.
20년 가까이 인천시 역사자료관에서 인천 역사를 발굴하고 알리는 일에 헌신했던 강덕우(63) 개항장연구소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강덕우 대표는 올해 인천 중구와 함께 백범 김구를 중심으로 한 인천의 독립운동 역사 문화 콘텐츠 발굴 작업을 진행했다.
그는 이 사건으로 해주부에 체포됐다가 외국인 사건을 담당하던 인천감리서로 이송돼 옥살이했다. 김구는 여기서 사형을 선고 받았다.
1883년 개항된 인천에는 그해 8월 통상 업무를 담당하는 감리서가 설치됐고, 1886년 개항장재판소가 별도로 세워졌다.
강덕우 대표가 인천 중구 신포동 사무실에서 인천 개항장 지도를 배경으로 백범 김구의 탈출로와 옥바라지 길, 축항 노역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지금의 중구 신포동 스카이타워 아파트 자리다. 당시 행정사법제도상 백범은 인천과 필연적 인연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는 게 강 대표의 설명이다.
강덕우 대표는 백범 김구가 단순히 인천에서 옥살이한 것에만 주목하지는 않는다.
인천감리서 주변 인천사람들이 보낸 백범 김구에 대한 열렬한 지지와 어머니 곽낙원 여사의 옥바라지가 어쩌면 지금의 백범을 있게 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했다.
강덕우 대표는 당시 지도 등 옛 문헌과 백범일지 등을 토대로 백범의 탈출로를 재구성했다. 1박 2일에 걸친 그의 도피 여정을 최대한 사실과 가깝게 복원하려 했다. 애석하게도 고증이 불가능한 탈출로도 있었다.
아버지도 인천 객주 집에 더부살이하며 인천 감옥에 유교 경전 중 하나인 대학(大學)을 넣어 김구가 옥중에서도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독려했다. 김구는 아버지의 도움 덕에 인천감옥을 ''학교''로 만들 정도로 수감 동료에 대한 교육활동에 매진했다.
백범은 지금의 인천 축항 공사 노역에 동원됐다. 지금의 내항 일대다. 인천항에도 그의 피와 땀이 서려 있다.
그 뒤의 행적은 너무나도 잘 알려졌다. 강덕우 대표는 인천과 백범 김구의 이 같은 역사적 인연이 인천만이 가진 역사문화 자산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백범 탈출길 ▲옥바라지길 ▲축항 노역길 등 백범의 길을 복원해 어떤 식으로든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 대표는 "백범이 탈출했던 예상 경로를 따라서 가다 보면 도시화 과정 속에서도 싸리재길이나 우각로 등 120년 전 옛길이 아직도 다수 남아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며 "이런 길에 백범 김구라는 스토리를 얹혀 탐방로를 만들면 하나의 문화 관광 코스가 될 수도 있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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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www.kyeongin.com/main/view.php?key=2019121001000283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