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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두 아들에게 [김문 작가] - 미디어파인 2020.02.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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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admin | 작성일 | 2020-02-13 | |
[미디어파인 칼럼=김문 작가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4인과의 인터뷰-백범 김구]
두 아들에게 서울특별시 용산구 효창동에는 익숙한 공원이 있다. 지리적으로는 효창동 외에도 청파 2가동, 마포구 공덕동과 신공덕동까지 영역이 있으며 일반적 공원과는 달리 호국보훈 관련 시설 및 유적지들이 있어 호국적, 역사적인 분위기를 보이고 있다. 효창공원 안에 있는 백범기념관은 7인의 독립운동가가 묻혀 있어 임시정부를 옮겨온 듯하다. 조국의 광복을 위해 온 몸을 던졌던 그 의열한 숨결이 생생하게 들리는 것 같았다. 1932년 4월 29일 일왕의 생일날 행사장에 폭탄을 던져 일본 상하이 파견군대장을 즉사시킨 윤봉길, 1932년 1월 8일 일본 됴쿄에서 궁성으로 들어가던 일왕에게 수류탄을 투척하여 전 세계 피압박 민족에서 큰 충격과 가능성을 안겨준 이봉창, 일본 군사시설을 파괴하는 등의 항일운동을 전개한 백정기, 1919년 이후 중국 내 임시정부의 의정원 의장을 3차례 지냈으며, 1930년에는 한국독립당을 창당해 독립운동을 펼치며 임시정부 주석만 4차례 역임한 이동녕,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민족사적 정통성을 계승발전시키는데 헌신한 차이석, 독립군을 양성하고 광복군을 조직한 군사전문가 조성환 등. 그리고 백범... 백범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아마 ‘백범일지’일 것이다. 읽어본 사람도 있을 테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다. ‘백범일지’는 상 · 하 두 편과 일기 끝에 수록된 ‘나의 소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상편은 김구가 중국 상하이의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 있을 때인 1929년에 쓴 글이다. 지나간 생활과 독립운동을 돌아보는 내용이 담겨 있으며, 김인과 김신 두 아들에게 편지를 보내는 형식으로 썼다. 하편은 1932년에 그가 중심이 되어 만든 한인 애국단의 활동과 해방을 맞이할 때까지 이어진 독립운동을 기록하고 있다. 여기에서도 ‘나의 소원’을 통해 완전한 자주독립과 통일 국가를 바라는 김구의 마음이 담겨 있다.
▲ 사진=kbs방송화면 캡처
너희들이 아직 어리고 반만리 먼 곳에 있어 수시로 나의 이야기를 말해 줄 수 없구나. 그래서 그간 내가 겪어온 바를 간략히 적어 몇몇 동지에게 맡겨 너희들이 아비의 경력을 알고 싶어할 정도로 성장하거든 보여주라고 부탁하였다. 내가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너희들이 장성하였으면 부자간에 서로따뜻한 사랑의 대화로 족할 것이나, 세상 일이란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구나. 내 나이 벌써 쉰 셋이건만 너희들은 겨우 열 살, 일곱 살의 어린 아이니, 너희들의 나이와 지식이 더할수록 나의 정신과 기력은 쇠퇴할 따름이다. 또한 나는 이미 왜구(倭仇)에게 선전포고를 하여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사선(死線)에 선 몸이 아니냐. 지금 일지를 기록하는 것은 너희들로 하여금 나를 본받으라는 것이 결코 아니다. 내가 진심으로 바라는 것은 너희들 또한 대한민국의 한 사람이니, 동서고급의 많은 위인 중 가장 숭배할 만한 사람을 선택하여 배우고 본받게 하려는 것이다. 나를 본받을 필요는 없지만, 너희들이 성장하여 아비의 일생 경력을 알 곳이 없기 때문에 이 일지를 쓰는 것이다. 다만 유감스러운 것은 오래된 사실들이라 잊어버린 것이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부러 지어낸 것은 전혀 없으니 믿어주기 바란다. 대한민국 11년(1929) 5월3일 <다음과 같은 자료를 참고 인용했다>
[김문 작가] 김문 작가 gamsam1013@naver.com
출처 : http://www.mediafine.co.kr/news/articleView.html?idxno=690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