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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일제시대만 못하다” (환국1주년 소감)-11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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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admin | 작성일 | 2019-09-23 |
1946년 마무리하면서, 백범의 친일파에 대한 공격이 많아졌다. 이것은 우익 내에서 이승만. 한국민주당의 부상과 백범. 임시정부의 하락, 백범의 좌우합작에 대한 경사 등과 함수관계에 있다. 11월23일은 임정 환국1주년이기도 하지만, 임정환국을 제1호 호외로 보도한 『서울신문』 창간 1주년이기도하다. 이글은 『서울신문』 에만 수록되어있다. _ 『서울신문』1946.11.26
오늘11월23일은 내가 환국한 지 1주년이 되는 날이다. 나의 연령이 고희를 넘어 신경이 둔하고 혈기가 쇠약하다 할지라도 목석이 아닌 이상 어찌 느끼는 바가 없으랴. 그러나 친애하는 동포들의 친절한 부탁을 한가지도 이행하지 못한 나로서 이날 이 땅에서, 더구나 이 환경에서, 어줍지 않게 감상 혹은 정론政論이나 발표하고 앉아 있는 것은 양심상 허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남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오늘 하루를 반성과 침묵으로 보낼까 하였는데, 뜻밖에 오늘이 『서울신문』 첫돌이라고 축하 인사로 문장 한편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게 되었다. 강화江華에서 돌아와서 여장도 풀기 전에 받은 부탁이니 졸문졸필인 나에게는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남의 잔치를 빌려서 무료한 내 심정의 한구석이라고 풀어 볼까 하여 붓을 들었다. 뜻밖의 일이 되어 준비가 없으므로 무조건 무질서하게 쓰는 수밖에 없다. 어그러짐이 많으나 따뜻한 양해로 나의 솔직한 것만 실피고 읽어 주시기를 바란다. 나의 심정을 언제든지 요란케 할 뿐만 아니라 서늘하게 하며 뭉클하게 하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일제시대만 못하다”는 소리다. 내가 입국한지 몇 개월이 되지 못하여 이 소리를 듣기 시작했는데, 최근에는 경향 각지에서 이 소리가 있는 것 같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의 양심도 우리가 가시 검토할 필요는 있겠지만, 그런 소리가 나오는 사실을 무시할 수가 없는 까닭에, 현실을 현실 대로 인정하고 논하는 것이다. 오랜 기간 전쟁의 와중에 있었고, 또 왜적의 퇴각과 동시에 더 한층 큰 파괴를 당한 우리에게 물질적 혜택이 극도로 빈약할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므로 “일제시대만 못하다”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정신상으로는 해방으로 무한한 위안을 받아야만 할 것인데, 사실은 그렇지도 못하다. 물론 물질의 혜택이 결핍한데 정신상 고통이 없기가 어렵지만, 그것도 정도 문제다. 과연 최근의 상황은 울자니 상서롭지 못하고 웃자니 유쾌한 것이 없이 되었다. 이와 같은 모순의 현상을 개선할 의무와 능력을 가진 사람은 물론 위정자인 것이다. 그중에도 더 큰 책임이 있는 사람은 한국인 관리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우리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보라, 입으로 통일을 부르짖으면서 자꾸 정치 단체를 만들어낸다. 주의와 사상이 다름을 빙자하지만, 같은 진영내에서도 이합집산이 끝이 없다. 민족반역의 응징을 부르짖으면서 해방 이후 새로 나오는 민족반역에 대해서는 주의 하지도 않는다. 친일분자의 숙청을 마땅하지만, 그 죄상을 헤아리지 않고 자신의 애증에 따라서 용서할 만한 자도 기어이 매장하려고만 한다. 반면 친일분자로 지목을 받는 자 중에서, 일찍이 왜적 이상으로 왜국을 위하여 충견 노릇을 한 무리는 감히 대두로 하지못하며, 혹 그 정상이 비교적 가벼운 무리로 자숙하는 부분도 없지않다. 그러나 소위 황국皇國의 성전聖戰을 위하여 글장이나 쓰고 연설쯤 한한 것 문제도 죄지 않는다고 하면서 도리어 발호하는 무리를 대할 때는 구역질이 나지 않을 수 없다. 만일 전국의 지사들이 적의 핍박으로 인하여 한 사람이라도 이것을 피한 자가 없다 하여도 그와 같이 철면피 노릇을 하지 못하려든, 하물며 그런 교태를 버리지 않고도 지금까지 살아있는 지도자들이 있는데야 어찌하랴. 이 밖에 또 공명정대와 결백을 부르짖으면서 뇌물을 주고받는 행위가 공공연하게 표현되고있다. 이권利權을 처리할 권한을 맡은 부분일수록 이것이 더욱 심한 듯하다. 통화가 팽창하여 물가가 점점 올라가 민생이 토탄에 있건만, 돈은 점점 극소수의 모리배와 부호의 손으로 들어가고있다. 그리하여 중산계급 소시민까지 빈손의 무산층으로 몰락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모리배들은 그 위험한 상태를 도외시하고 절대다수의 동포를 기만하여 우롱하면서 그들의 주머니를 짜내고 있다. 내가 여기지적하는 모리배에는 동포의 이익을 무시하고 자신의 사사로운 이익만을 위해 날뛰는 정객政客들도 포함하지 않을 수 없다. 이와 같은 예는 일일이 거론할 필요조차 없거니와, 그 원인을 생각하면 일본 제국주의가 직접 간접으로 끼쳐 준 심리상 독소가 그래도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독소가 남아있는 한 모든 것이 일제시대와 같든지 도리어 그만도 못할 것이다. “푸른색은 쪽에서 나왔으나 쪽보다 더 푸르다”는 것은 이를 두고 한말일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우리에게 남은 심리상 독소를 깨끗이 숙청하지 못하면, 안으로 민족적 통일, 밖으로 국제적 동정은 없을 것이다. “마음이 죽은 것보다 더 큰 절망은 없다”라 하니 어찌 경계하지 않으랴. 우리가 혁명을 완전히 성공하려면 반드시 먼저 혁심革心을 해야한다. 조국의 완전한 독립과 동포의 자유로운 번영을 위하여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려는 우리는 먼저 새로운 심리를 건설하지 않으면 안된다. 나의 감사이 어찌 보면 설교와도 비슷하지만 나는 갈수록 이것을 심각히 느끼고있다. 『서울신문』이 탄생한 지는 불과1년이지만 그동안에 여론 지도와 민지民智계발에 위대한 업적을 내어 실로 우리의 독립운동에 공헌이 지대 하였다는 것은 자타가 공인하는 바로 경의를 표하는 바이거니와, 앞으로는 심리 건설을 위하여 특별히 노력이 있기를 간망한다. 그리하여 하루라도 속히”일제 시대만 못하다”는 소리를 근절시키는 동시에 우리의 자주독립을 촉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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