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 [공지] 2023년 재미한국학교협의회 제12회 독서감상문쓰기대회 개최 2023-02-14
- [공지] 미주한국학교총연합회(KOSAA) 제6회 독서감상문쓰기대회 수상자 및 심사총평 2022-11-24
- [공지] 미주한국학교총연합회(KOSAA) 제6회 『백범일지』 독서 감상문 쓰기 대회 2022-09-07
- [북경대학교]김구포럼 - 제8회 한 . 중 정책 학술회의 2021-11-24
김구포럼
- [하버드대학교 김구포럼 2023년 4월] Personalizing Nor
- Personalizing North Korean Lives Date: Thursday, April 20, 2023, 4:30pm to 6:00pmLocation: Thomas Chan-Soo Kang Room (S050), CGIS South Building, 1730 Cambridge Street, Cambridge, MA 02138 Kim Koo Forum Katharine MoonProfessor Emerita of Political Science, Wellesley College; Kim Koo Visiting Professor, Harvard University Katharine (Kathy) H.S. Moon is Professor Emerita at Wellesley College, where she taught political science for thirty years. She specialized in research on women and gender in International Relations, U.S.-Korea relations, and social movements in East Asia. She was also the inaugural chair in Korean Studies at The Brookings Institution, where she worked as a senior fellow in the Center for East Asia Policy. She is currently Kim Koo Visiting Professor at Harvard University. Chaired by John S. Park, Director of the Korea Project, Belfer Center for Science and International Affairs, Harvard Kennedy School Abstract:Do North Koreans fall in love? Do they have a favorite food despite the ongoing food shortage and the Great Famine of the 1990s? How do they experience friendship, grieve for their deceased, deal with inter-generational divides? Prof. Moon conducted in-depth interviews with North Koreans living in London and Toronto to understand their humanity first and foremost -- universal experiences like family relationships, friendships, childhood and school life, love, marriage, death, etc. She sought to learn about the unspoken and seemingly apolitical details of North Koreans’ lives rather than reproduce what is so familiar to North Korean interview subjects: the exclusively explicit political interrogation. In the process of narrating their personal views and memories, the diasporic North Koreans revealed their keen understanding of the political infrastructure that informed their social institutions and communal life. *** For further information, please visit Korea institute‘s website.(https://korea.fas.harvard.edu/event/tbd-4)

언론홍보
- ‘역사저널 그날’ 산 자들의 [한국강사신문 이미숙 기자] 한국사 최대 라이벌, 김구와 이승만. 1949년 6월 26일 김구는 자신이 머물던 서울 종로의 경교장에서 안두희가 쏜 네 발의 총탄을 맞고 향년 74세의 나이로 눈을 감는다. 열흘간 국민장으로 치러진 장례식에는 백만여 명의 인파가 참석하는 등 그의 죽음에 온 국민이 비통에 잠겼다. 이후 김구의 묘소에 끊임없이 밀려드는 참배 행렬에 이승만 대통령은 위기감을 느낀다. 김구의 추모식과 묘소 참배를 막고, 독립운동 기록이 담긴 를 금서로 취급하는 등 김구의 그림자를 지우려 한다.죽은 후에도 이승만 대통령의 정적으로서 존재감을 드러냈던 김구가 묻힌 효창공원. 그곳은 이미 김구와 이승만, 두 사람의 정쟁 무대였다. 효창공원에 담긴 한국사 최대 라이벌 두 거물의 정치사! 394회 편에서 알아본다.1932년 1월 8일, 도쿄에서 천황 히로히토에게 폭탄을 던진 이봉창. 같은 해 4월 29일 중국 상하이 홍커우공원에서 폭탄을 던져 일본군 대장을 처단하는 등 일제에 큰 충격을 안긴 윤봉길. 중국 주재 일본 공사 암살을 시도한 백정기. 1946년, 김구는 일본에 있는 박열 등 독립운동가들에게 삼의사의 유해 봉환을 부탁하고, 6월 15일 조선해방자호에 실려 온 삼의사 유해는 효창공원에 묻힌다.해방 후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독립운동가들의 유해 봉환을 위해 힘쓴 김구. 그는 어째서 효창공원을 독립운동가의 묘지로 선택했을까? 일본의 비협조로 난관에 봉착했던 윤봉길 의사의 유해 수습은 어떻게 가능 했을까?김구의 주도하에 이루어진 독립운동가들의 유해 봉환 과정, 그들이 묻힌 효창공원에 관해 이야기를 나눠본다. 본래 ‘효창원’이라는 이름의 문효세자 묘지였던 효창공원. 조선 22대 왕 정조와 의빈 성씨 사이에서 태어난 문효세자는 정조가 31살에 낳은 늦둥이이자 장자이며 오랜 사랑의 결실이었다. 문효세자가 5살에 홍역으로 죽고, 그로부터 4달 후 의빈 성씨마저 만삭의 몸으로 세상을 떠나자, 궁과 가까운 곳에 효창원을 조성한 정조는 두 모자를 서로의 곁에 묻어준다.아버지 사도세자의 묘(현륭원)를 통해, 그 어떤 왕보다 왕릉을 정치적으로 이용했던 조선 최고의 정치 군주, 정조. 그런 그가 유일하게 아버지이자 남편으로서 만든 효창원에 담긴 애틋한 사랑은 일제강점기와 근현대 시기를 거치며 다양한 역사적 맥락을 지닌 공간이 된다. 정조의 가족애로부터 시작된 효창원의 다사다난한 역사를 알아본다.용산이라는 지리적 이점으로 인해 청일전쟁 당시 일본군의 군 주둔지 및 유곽이 자리하는 등 수모를 겪었던 효창원. 심지어 1921년 6월 일제는 철도 호텔의 관광객 유치를 위해 왕실 묘역인 효창원에 골프장을 개장한다. 일제강점기의 아픔이 담긴 우리나라 최초의 골프장으로서 효창원의 역사는 어땠을까? 자칭 ‘세리 키즈’ 최예지 골퍼와 함께 골프의 자세부터 효창원 골프장까지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보기로 한다.골프장 이후로도 일제에 의해 효창공원으로 이름이 바뀌고, 효창운동장이 조성되어 제2회 아시안축구선수권대회가 열리는 등 시대의 흐름 따라 잇따른 변화를 겪는 효창공원. 겹겹이 쌓인 역사가 압축되어 담긴 공간, 효창공원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을 1월 22일 일요일 저녁 9시 40분, KBS 1TV 394회 편에서 만나본다.*김구암살사건은 1949년 6월 26일 백범(白凡) 김구(金九)가 서울 경교장에서 안두희(安斗熙)에게 암살당한 사건이다.1945년 8월 15일 해방 직전까지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으로서 독립운동을 이끌었던 백범 김구는, 해방 직후 중국에서 귀국하여 새로운 국가 건설에 앞장섰다. 특히 김구는 해방 이후 치열한 좌우대립의 과정에서 신탁통치 반대운동 등 우파의 정치활동을 주도하였다.그러나 1947년 말 남북 분단의 가능성이 커지면서 김구는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주장하던 이승만과 결별하고, 중도파였던 김규식(金奎植)과 함께 ‘남북협상’ 등 분단을 막기 위한 노력을 전개하였다. 결국 분단을 막는 데 실패한 김구는 1948년 8월 15일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에 참여하지 않고, 사실상 정계 2선으로 물러났다.그러던 중 1949년 6월 26일 김구는 현역 육군 포병소위이자 김구가 이끌던 한국독립당(약칭 한독당) 당원이었던 안두희에게 숙소이자 집무공간이었던 서울 경교장에서 4발의 총탄을 맞고 사망하였다. 김구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여론은 깊은 애도를 표명하였다. 김구 암살 후 장례식까지 10일 간 다녀간 조문객은 약 120여 만 명으로 추산되었고, 건물 안에 들어오지 못한 문상객도 많았다. 장례식이 있던 7월 5일 서울에서 거행된 장례식에는 약 40∼50만의 인파가 몰려들었고, 다른 도시에서도 각각 수만 명씩이 모여 고인을 애도하였다.사건 당시 정부와 군 당국은 이 사건을 한독당 내부의 갈등에서 비롯된 것으로 몰아갔다. 사건 직후 국방부는 안두희가 김구와 한국독립당의 노선을 둘러싸고 언쟁을 벌이다가 김구를 살해한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그리고 안두희를 김구에게 소개시키고 한국독립당에 가입하게 했다는 혐의로 한국독립당 조직부장이자 광복군 지휘관이었던 김학규(金學奎)를 구속하였다.7월 2일 이승만(李承晩) 대통령도 이 사건이 한국독립당의 내분으로 일어난 것이라는 내용의 특별성명을 발표하였다. 7월 20일 군 당국은 최종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이 사건을 대한민국 정부를 전복하려 한 친공산주의적인 한국독립당의 음모에 맞선 안두희의 ‘의거’라고 규정하였다. 안두희도 재판 중 2계급 특진을 하였고, 사건 1년여 만에 형 면제 처분을 받고 군에 복귀하는 등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특혜를 받았다.오랜 시간에 흘러 한국 사회 전반에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김구 암살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의 목소리가 커졌다. 여기에 1992년 드디어 안두희의 육성 증언이 나왔다. 이에 국회는 1993년 이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한 조사위원회를 구성하였다. 약 2년간의 조사 후 위원회는 「백범김구선생 암살진상국회조사보고서」를 작성하였고, 이 보고서는 1995년 12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였다.이 보고서에 따르면 김구 암살사건은 당시 정부 발표처럼 한국독립당의 노선을 둘러싼 내분 과정에서 안두희가 개인적 차원에서 우발적으로 저지른 사건이 아니라, 면밀하게 준비·모의되고 조직적으로 역할이 분담된 정권 차원의 범죄 행위였음이 밝혀졌다.먼저 암살범 안두희의 1차적 배후는 ‘군부’였다. 즉, 포병사령관으로 안두희의 직속상관이자 같은 서북청년단 출신인 장은산(張銀山)이 암살을 명령하였고, 사건 발생 이후 김창룡 특무대장이 적극적으로 개입하였으며 채병덕(蔡秉德) 총참모장, 전봉덕(田鳳德) 헌병 부사령관 등이 사후처리를 주도하였다는 것이다. 이들은 모두 일제강점기 일본군, 만주군, 경찰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었다.‘군부’와 더불어 안두희가 가담했던 ‘서북청년단’ 세력들도 이 사건에 깊이 관여하였다. 또한 보고서는 김구 암살사건의 배후와 관련해 가장 큰 쟁점이 되어 온 이승만 대통령의 관련 여부에 대해, 암살 사건 이후 안두희의 행적과 군부의 보호 조치가 이승만의 묵인 없이는 불가능하였고, 또 그가 이 사건에 대해 도덕적·정치적 책임을 져야 하는 위치에 있었던 것은 분명하지만, 이 사건에 사전 개입하거나 암살을 지시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판단을 내렸다. 미국의 관련 여부에 대해서도 미국이 암살사건에 대해 상당한 정보와 지식을 갖고 있었지만, 암살사건에 직접 개입했다는 증거는 찾을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국회의 보고서 등 지금까지 이루어진 관련 조사와 연구를 종합해 보면, 먼저 김구 암살사건은, 김구가 친일청산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왔다는 점에서, 1949년 6월 전후에 일어난 국회프락치사건이나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습격사건 등 정부 내 친일세력이 친일청산에 앞장선 반대세력을 물리적으로 탄압하고자 했던 일련의 사건들과 연장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었다. 또한 당시 김구가 정계에 복귀할 가능성이 있었다는 점에서, 정권 차원에서 가장 위협적인 정치적 경쟁자를 제거하는 동시에, 김구와 한국독립당까지 친공세력으로 몰아붙임으로써 정권의 기반인 극우반공체제를 강화하려 했던 조치였다고도 평가된다.은 ''역사''와 ''이야기''의 만남, 우리 역사의 커다란 물줄기가 바뀐 결정적인 하루가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전개된다. 역사가 움직인 터닝 포인트인 ''결정적 하루''를 입체적으로 구성하는 교양과 재미가 있는 인포테인먼트(정보 오락) 프로그램이다. 그날의 주연과 조연은 누구였으며, 그 당시 세계는 어떻게 흘러가고 있었고, 오늘에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인지를 출연진이 수다로 풀어보는 본격 역사 토크쇼이다. 프로그램 정보, 공식영상, 회차 정보, 출연진(최원정·최태성·이시원·허준 외) 등이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지식 다큐멘터리 방송이다. 최고 시청률은 6.7%(제공 닐슨코리아)를 기록했다. 방송시간은 일요일 밤 9시 40분이다.*참고자료 : 김구암살사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출처 : 한국강사신문(https://www.lecturernews.com) 2023-01-30
- Opinion : 심은경의 미 광화문에 있는 교보문고는 내가 서울에서 좋아하는 곳 중 하나다.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거대한 지하 미로 같은 통로를 돌아다니며 다양한 세대의 한국 독자들에게 인기 있는 책이 무엇인지 눈여겨보곤 한다. 다양한 번역서, 눈에 띄게 전시된 도서, 세계적 베스트셀러 후보작 등 한국에서 유독 두각을 나타내는 해외 작품들이 뭔지 살펴본다. 이곳에선 휴대폰으로 글을 읽는 데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쓰고 이를 ‘독서’라 부르는 현대사회에서 책이 여전히 중요하다는 것을 상기시켜 줘 마음도 편안해진다. 서울이나 워싱턴 지하철 출퇴근길에서 휴대폰을 보는 대신 독서를 하는 소수의 특이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항상 반가운 일이다. 그럴 때면 그들이 어떤 책을 읽는지 몰래 훔쳐보곤 한다.나는 몇 년 전 미국외교아카데미(이하 아카데미)의 도서 선정위원회 참여 제안을 받았을 때도 바로 수락했다. 이 위원회는 매년 ‘미국 외교 활동에 관한 우수 도서’를 선정해 시상하고 있다. 역대 수상작 중에서 한·미 관계와 대북 협상에 관한 이해의 폭을 넓혀준 한국 외교 관련 도서 두 권을 발견했다. 첫 번째는 윌리엄 글라이스틴 전 주한미국대사의 회고록 『깊숙한 개입, 제한된 영향력: 카터와 위기의 한국』이다. 2000년 수상작품인 이 책은 그가 1978년부터 1981년까지 대사로 일했던 한국에서의 경험을 진솔하게 담고 있다. 다른 한 권은 2005년 수상작인 『북핵 위기의 전말: 벼랑 끝의 북미협상』(조엘 위트·다니엘 포네만·로버트 갈루치 공저)이다. 1953년 정전협정 이후 미국과 북한의 첫 번째 실질적 외교협상을 거쳐 1994년 제네바 합의를 이끌어낸 역사적 사건들을 연대순으로 기록한 책이다.다른 수상작들도 살펴보면 아카데미가 미국 외교의 성공이나 외교관 출신 저자들의 탁월함을 의례적으로 축하하기 위해 상을 수여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외교활동이 얼마나 까다롭고 불완전한지 잘 보여주거나 아카데미가 표현하는 것처럼 ‘외교가 제공하는 기회와 한계에 초점을 맞춘’ 도서에 높은 점수를 주는 것을 알 수 있다.올해는 한국이나 아시아에 특화된 출품작은 없었지만 교훈을 얻고 선택할 만한 후보들은 많았다. 마리 요바노비치 전 우크라이나 주재 미국대사의 회고록 『변방에서 얻은 교훈』과 피오나 힐 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유럽·러시아 담당 고문의 『여기 당신을 위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트럼프 정부 시절 두 여성의 전문성과 진실성을 용기있게 담고 있는 파격적인 작품들이다. 트럼프 정부 이전 이들의 빛나는 삶에 대한 감동적인 이야기도 들어있다. 성별에 상관없이 외교관이나 공무원을 꿈꾸는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헨리 키신저와 중동 외교를 다룬 책도 있었고 독일 통일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확장에 대한 부시 행정부의 조치와 실수에 관한 도발적인 서적 『1인치도 용납되지 않는』도 후보 중 하나였다.2022년 수상작은 스팀슨센터의 공동 설립자인 마이클 크레폰의 『핵 평화의 승리와 패배: 군비 통제의 흥망성쇠와 부활』이다. 이 책은 고강도 줄타기 외교, 일촉즉발 위기, 끈질긴 집념, 엄청난 성공에 관한 놀라운 이야기를 담고 있다. 동시에 트루먼 시대부터 트럼프 시대까지 군비통제 예찬론자들과 핵억제 예찬론자들 간의 대격돌, 아이러니한 반전과 예상치 못한 결과를 생생하게 보여준다.“이 책이 북한과 관련이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혹자는 ‘군비통제’라는 단어를 읽고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하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책은 북한이나 이란에 관한 게 아니다. 외교를 어떻게 구체화할 것인가를 살펴보는데 더 적합하다.책을 권하는 차원에서 외교 분야는 아니지만 더 많은 독자들이 읽었으면 하는 책 두 권을 더 소개한다. 교보문고에는 한국어로 번역된 해외 서적이 많지만 나는 더 많은 독자들이 한국에만 국한되지 말고 정치·외교 관련 책들을 두루 접하길 권한다. 요즘 읽고 있는 책 중 하나는 모이제스 나임 전 베네수엘라 통상산업부 장관이 저술한 『권력의 복수: 21세기에는 독재자들이 어떻게 정치를 재창조하는가』이다. 한·미동맹이 ‘가치동맹’으로 강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저자가 ‘3P’라고 묘사한 포퓰리즘(populism)·양극화(polarization)·탈진실(post-truth)은 한·미 양국뿐 아니라 이 ‘3P’가 다른 국가에서는 어떤 상황인지 공통의 관심과 대응의 필요성을 일깨워 준다. 이는 공동의 도전 과제이며 우리가 자유를 어떻게 보존해야 할 지도 생각하게 해준다.두 번째는 이번 주 백범김구기념관을 방문하기 위해 한국에 오면서 다시 읽고 있는 책. 김구 선생의 『백범일지』이다. 외교관이 쓴 회고록은 아니지만 이승만 전 대통령처럼 외교관 역할을 해야만 했던 한국 민족주의 정치인의 회고록이다. 이 책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중반까지 격동의 세월을 보낸 한국인의 경험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나는 그 시절의 혼란과 외교를 다룬 영문서적이 앞으로 더 많이 나오길 바란다. 오늘날의 더 나은 정치와 더 나은 외교에는 필수적이기 때문이다.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 미국대사·한미경제연구소장 2022-1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