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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영상실록 "영웅" -윤봉길
작성자 admin 작성일 2016-07-08

 

김구재단과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가 제작을 지원한 영상실록 "영웅" 중

윤봉길 의사 편을 소개합니다.(TV 조선 방영)

 

 

 

"내 시계는 앞으로 한 시간밖에는 쓸 데가 없다…"

- 김구의 <백범일지> 중에서
4월 29일이었다. 윤봉길 군과 최후의 식탁을 같이하며 가만히 윤 군의 기색을 살펴보니 그 태연자약함이

마치 농부가 일터에 나가려고 넉넉히 밥을 먹는 모양과 같았다… 식사가 끝나고 일곱 점을 친다.

윤 군은 자기의 시계를 꺼내어 내게 주며 ''''이 시계는 어제 선서식 후에 선생님 말씀대로 6원을 주고 산 시계인데

선생님 시계는 2원짜리이니 제 것하고 바꿉시다. 제 시계는 앞으로 한 시간밖에는 쓸 데가 없으니까요…

자동차가 움직였다. 나는 목이 멘 소리로 "후일 지하에서 만납시다." 하였더니 윤 군은 차창으로 고개를 내밀어

나를 향하여 숙였다.

 

 

 

 

윤봉길, 우리가 몰랐던 이야기
- 손녀 윤주원씨가 말하는 ''내 할아버지 윤봉길'' -

 

수줍어 부인 얼굴도 제대로 못보고..가족을 사랑했던 가슴이 따뜻한 남자

 

할아버지는 농민교육을 통해 나라의 힘을 기르고자 하였으나 일제의 탄압이 점점 심해지자

 나라의 독립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뜻을 품고 상해 임시정부를 찾아갑니다. 할아버지는

떠나면서 차마 할머니께 말은 못하고 부엌에 계신 할머니를 한 번 더보고 싶어 물 좀 달라고

부르셨답니다. 물을 받더니 마시지는 않고 옆으로 치워 놓고 네 살 된 아들 종(淙)에게

"아버지가 돈 많이 벌어서 좋은 공부시켜 주겠다"라고 말하셨다고 합니다.

 

돈 많이 벌어서라는 말은 아마 독립된 나라를 물려주고 싶다는 마음을 그렇게 표현하신 것 같습니다.

 그때 할머니는 둘째 아들을 임신하고 있었는데 할아버지는 그것도 모르고 먼 길을 떠나셨습니다.

할아버지는 여동생의 남편감을 알아보러 간다고 거짓말을 하였기에 식구들은 그것이

마지막이 될 줄 몰랐습니다.

할머니 말씀에 의하면 할아버지는 수줍음이 많아 평소에 할머니 얼굴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셨답니다.

하지만 시동생 많은 시집살이에 힘든 할머니를 생각하여 야학을 나갈 때 아들 종을 안고 가서 수업을

하시기도 하고 할머니가 냇가에 빨래를 하러 가면 무거운 빨래를 말없이 날라 주시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 시절에 남녀의 일이 구분되어 있어 어른들은 좋게 보지 않았지만 그런 자상한 면이 있는 분이라

그렇게 훌쩍 떠나실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합니다. 

 

독립에 대한 강한 의지..거사를 위해철저한 준비를 했다.


할아버지는 청도에서 돈을 벌어 집을 나올 때 가지고 온 월진회* 회비를 갚고 상해로 가서

김구 선생을 만나 비밀결사인 한인애국단에 입단하게 됩니다.

김구 선생이 홍구 거사를 이야기하자 흔쾌히 받아들이고 준비하셨습니다.

저는 할아버지가 얼마나 철저한 분이신지 나라 독립을 위한 마음이 얼마나 컸는지

거사 과정을 보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할아버지는 거사 전 홍구 공원을 답사하며 폭탄을 던질 위치와

거리 및 방법을 연구하셨다고 합니다.


* 월진회: 윤봉길 의사가 중국으로 망명하기 전 농촌의 발전을 위해 고향인 충남 예산군 덕산면에

세운 민간단체로, 부업을 희망하는 농가에 새끼돼지를 한 마리씩 나누어 주어 기르게 하며 닭도

사육하게 하는 활동을 펼친 것이 그 효시다. 청소년들에게 나라와 고향을 사랑하는 정신을

심어주기 위한 단체로 윤 의사가 생전에 창립한 이래 지금까지 꾸준히 이어져 왔다.

 

"장부출가생불환" - 죽음앞에서 두려워하지않고 당당했다.


증조할머니가 할아버지에게 할아버지가 보지도 못한 둘째 아들이 태어나 걸어 다닐 만큼 컸으니

이제 집으로 돌아오라는 편지를 보냅니다. 이에 할아버지는 돌아갈 수 없다는 답장을 보냅니다.

할아버지는 앞서 집을 떠나시면서 "장부출가생불환(丈夫出家生不還 · 장부가 뜻을 세우고 떠나면

뜻을 이루기 전에는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라는 글을 남기신 바 있습니다.

그러나 증조할머니께 보낸 편지의 내용에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 집안 대소사 걱정 등 장남으로서의

책무를 못하는 불효에 가슴 아파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할아버지의 순국 장면 사진을 보면 어떻게 죽음 앞에서 저리도 당당하고 두려움이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마지막 남기신 말씀도 "사형은 각오했고 할 말은 없다"였다고 합니다.

할아버지가 두 아들에게 남기신 유시(遺詩)를 읽어드리고 싶습니다.

 

- 윤주원 (단국대 부속중학교 역사 교사)
(참고=여시동 저   ''''인간적인 책'''')

 

윤봉길, 목숨을 바친 애국(愛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