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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김구 선생이 말한 문화는 그것이 아니었다 -이코리아 2022.11.1
작성자 admin 작성일 2022-11-04


 

[이코리아] 내가 몽골국제대학교에서 근무할 적의 일이다. 당시 교직원 중 다수가 한국인이었고, 그 외에 몽골, 러시아, 미국, 중국 출신의 다양한 민족이 함께 일을 하고 있었다. 몽골과 그 주변국의 소수민족들의 리더를 길러내겠다는 사명감으로 뭉쳐 있던 교직원들은 출신에 관계없이 서로 살갑게 지냈다. 식사 교류도 잦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도 여러 사람이 누구네 집 식탁에 모여 있을 때였다. 한 러시아인이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음식을 먹을 때 왜 소리를 내는 거죠?”

시끌벅적한 식사 자리에서 문득 지나가는 말이었다. 그러나 나를 비롯한 몇몇 사람들은 분명히 그의 말을 들었다. 

처음엔 그의 말이 의아했다. 한국인으로 말하자면, 소위 동방예의지국 출신이다. 예의라면 세계에서 빠지지 않는 나라라 생각했다. 특별히 식사 예절은 과하면 과했지 덜하지 않았다. 한 세기 전만 해도, “어디 감히 할아버지 앞에서 숟가락을 안 쓰고 젓가락질을 하냐”며 귓방망이를 맞던 나라였으니 말이다. 헌데 중국인도 아니고 일본인도 아니고 백안의 러시아인에게 예절 수업을 받게 될 줄이야! 그것도 기본 중에 기본인 ‘입 다물고 씹기’에 대해 지적을 받다니…….

나는 잠시 식사를 멈추고 주위의 한국인들을 둘러보았다. 충격적이게도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상당수의 한국인들이 소리를 내며 먹고 있었다. 개중에는 보란 듯이 입을 벌리고는 쩍쩍 소리가 날 정도로 씹는 이도 있었다. 

순간 ‘나는 방금까지 어떻게 씹고 있었지?’ 하는 생각이 드니 아찔했다. 그런데 아무리 떠올리려 해도 기억이 잘 안 났다. 그들처럼 소리를 내면서 먹지 않았다는 확신이 없었다. 그날 나는 식사가 어떻게 끝났는지도 몰랐다. 식탁을 떠나기까지 내 정신은 온통 내 입술에만 쏠려 있었기 때문이다. 

분명히 부모님께 배웠다. 학교에서도 배웠다. 밥상머리에서 씹는 소리는커녕 말소리도 내지 못하고 수백 년을 산 게 우리 조상들이다. 그렇기에 내가, 우리 한국인이 그러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 

우리나라가 자타가 공인하는 경제 선진국이 되었고, 한국의 드라마, 영화, 노래 등이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일각에서는 드디어 우리나라가 김구 선생이 꿈꾸던 ‘문화강국’이 되었다며 감격하기도 한다. 그러나 선생이 말씀하셨던 문화란 단순히 예술문화에 한정된 것이 아니었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 인류가 현재에 불행한 근본 이유는 인의(仁義)가 부족하고 자비가 부족하고 사랑이 부족한 때문이다. … 인류의 이 정신을 배양하는 것은 오직 문화이다. … 

내가 위에서 자유와 나라를 강조하고 교육의 중요성을 말한 것은 이 때문이다. 최고 문화 건설의 사명을 달한 민족은 일언이폐지하면 모두 성인을 만드는 데 있다. 대한 사람이라면 간 데마다 신용을 받고 대접을 받아야 한다. … 

우리 민족을 인(仁)을 좋아하는 민족이라 하였으니, 옛날에도 그러하였거니와 앞으로도 세계 인류가 모두 우리 민족의 문화를 이렇게 사모하도록 하지 아니하려는가. … 나는 우리의 힘으로, 특히 교육의 힘으로 반드시 이 일이 이루어질 것을 믿는다.”

_김구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

김구 선생이 말한 문화의 힘은 도덕(仁義), 신용, 어짐(仁)에 대한 것들이었다. 한마디로, 사람 됨됨이, 그것이 세계 모든 사람이 사모하는 진짜 문화라는 것이다. 

해외 생활을 하면서 여러 나라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던 나로서는 선생의 생각에 크게 공감한다. 때로 우리는 선진국 사람들에 대해 평균 이상으로 긍정적인 이미지를 갖곤 하는데, 나 역시 그런 부분이 있었다. 그런데 실제 그 나라 사람을 만나서 관계를 맺다 보면 실망스러울 때가 있었다. 그건 다름 아닌 그가 기본적인 예의를 갖추지 못했다고 생각될 때였다. 그 반대의 일도 있었다. 후진국이나 개발도상국 출신의 사람이었으나, 그의 됨됨이에 감탄하여 그를 흠모하게 된 경우이다. 

예의와 됨됨이란 사실 별다른 것이 아니다. 엘리베이터에서 다른 사람을 위해 버튼을 눌러 주는 일, 사람과 이야기할 때 눈을 마주치고 들어주는 일, 꽁초를 바닥에 버리지 않는 일, 거드름을 피우지 않는 일 등 우리가 이미 다 알고 있으나 미처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기본기’에 가까운 일들이다. 

얼마 전 튀르키예 여행 중 어느 대학에 들렀을 때였다. 한 신입생이 우리 일행에게 ‘한국말로’ 말을 걸어왔다. 그는 반가워서 어쩔 줄을 몰라 했으며, 잠시나마 우리와 교제하고 싶어 했다. 모르긴 몰라도 「오징어 게임」과 「BTS」를 통해 한국 문화를 접했으리라. 그가 만일 우리네 삶의 평범한 모습을 접한다 해도 그의 한국사랑은 여전할까? 

지금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고리타분한 예의범절 이야기를 꺼내느냐며 의문을 가질 이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세계화의 정점을 달리고 있으며 인공지능과 메타버스가 화두인 이 초현실의 시대에도 ‘기본기’는 중요하다. 그런 것이야말로 인간에게서만 찾아볼 수 있는 ‘바로 그 무엇’이기 때문이다. 

[필자 소개] 이송용 순리공동체홈스쿨 교장, 전 몽골국제대학교  IT 학과 조교수

출처 : 이코리아(http://www.ekorea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