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교육 게시판입니다.

제목 ‘2009 백범장학금’ 수여식
작성자 admin 작성일 2012-06-25
파일/사진받기 다운로드

 

 

‘2009 백범장학금’ 수여식

- “좋은 민주주의 정치는 좋은 교육에서 시작된다.”


- 5일, 김구재단 사무실에서 독립유공자 자녀 등 46명

 


재단법인 김구재단(김호연 이사장)이 독립유공자 및 국가유공자 자녀와 가정 형편이 어렵지만 학업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한다.

 


2009 백범장학금 수여식은 오는 5일(목) 오후 3시 김구재단 사무실(쌍용대로 4가 신한은행 건물 3층)에서 펼쳐지며, 46명의 학생들에게 각각 50만원씩 모두 2천 3백만원이 지급된다.

 


이번 장학금 지급 대상자 중에는 일제강점기 삼달양행과 상원양행을 설립해 독립자금을 조달하고, 친일부호 처단 및 독립군 양성 등을 위하여 활동한 독립운동가 이관구 지사의 손자인 이예준(쌍용중 3) 군을 비롯해 육군표(제일고 1), 강보람(홍익대 4), 정선희(충남대 4), 하경옥(비전중 1)양 등 국가유공자 자녀 및 후손도 포함돼 있다. 

 



또한 박민규(천안북일고, 1년), 박선경(예산여고 2년), 문미나(논산여상고 2년) 학생 등 충청과 천안 지역의 학교장이 추천한 학생들도 이번에 백범 장학금을 지급받는다.

 


백범 김구선생의 손녀사위이기도 한 김호연 재단 이사장은 인사말을 통해 백범 서거 60주기를 맞아 독립운동가로서의 백범 뿐만 아니라 교육자로서의 백범선생을 소개하며 “좋은 민주주의는 좋은 교육에서 시작된다.”는 백범의 말을 인용했다. 

 



또한 백범 김구 선생님이 꿈꾸셨던 “수준 높은 문화의 힘으로 인류의 모범이 되는 대한민국은 바로 교육의 힘으로 이루어진다.”고 강조했다.

 


한편 재단법인 김구재단에서 수여하는 백범장학금은 1993년부터 지난해까지 국내와 국외에 거주하는 독립유공자 자녀와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 등 모두 773명에게 약 6억 6천만원이 지급됐다.

 



[첨부자료] 

3. 독립운동가 이관구 지사

이관구 [李觀求, 1885.4.29~1953.3.7] 

 

요약 
일제강점기 대한광복회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삼달양행과 상원양행을 설립해 자금을 조달하는 한편, 친일부호 처단 및 독립군 양성 등을 위하여 활동하였다. 8·15광복 후 대한무관학교 최고 고문 등을 지냈다. 저서에 《의용실기(義勇實記)》가 전한다. 

 


 
호  화사 


별칭  이명 종석 


국적  한국 
활동분야  독립운동 


출생지  황해 송화 
주요수상  건국포장(1977), 건국훈장 애국장(1990) 


주요저서  《의용실기(義勇實記)》 


본문 


호는 화사(華史)이고, 이명(異名)은 종석(鍾錫)이다. 황해도 송화(松禾)에서 출생하였다. 평양 대성학교(大成學校)를 졸업하고 숭실전문학교(崇實專門學校)에 다니던 중 1910년 국권이 피탈되자 중국으로 망명하였다. 베이징[北京] 회문대학(匯文大學)과 명륜대학(明倫大學)에서 수학하였고, 저장성[浙江省] 항저우[杭州] 군관학교 속성과를 수료한 후 1913년 7월 중국국민당(中國國民黨) 제2혁명에 참가하였다.

 


그뒤 미국으로 건너가 안창호(安昌浩)와 만나 항일운동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1914년 귀국, 황해도 해주(海州)에서 유림(儒林) 이종문(李種文)·오순원(吳淳元) 등과 밀의하여 항일격문을 작성·배포하였다. 이어 다시 중국으로 건너가 상하이[上海]에서 신규식(申圭植) 등이 주도하여 조직한 동제사(同濟社)에 가입하고 국권회복을 위하여 활동하였다.

 


1916년에는 박상진(朴尙鎭)이 주축이 되어 조직한 대한광복회(大韓光復會)에 가담, 고향의 가재(家財)를 팔아 마련한 자금으로 만주 안둥[安東]에 삼달양행(三達洋行)과 창춘[長春]에 상원양행(尙元洋行)을 설립해 이곳을 연락거점으로 삼고 신흥학교(新興學校)의 이시영(李始榮)에게 자금을 조달하는 한편, 친일부호 처단 및 독립군 양성 등을 위하여 활동하였다. 또한 조선총독 하세가와 요시미치[長谷川好道]의 암살을 계획하고 광복회 회원 성낙규(成樂奎)·조선환(曺善煥) 등을 서울로 잠입시켰다. 

 



1917년 대한광복회 황해도 지부장으로 활동하면서 조직확대를 위해 노력하였으나 1918년 회원인 이종국(李鍾國)의 밀고로 전국의 조직망이 발각됨에 따라 5년간 옥고를 치렀다. 8·15광복 후 대한무관학교(大韓武官學校) 최고 고문, 국민협의회(國民協議會) 회장 등을 지냈다. 저서에 《의용실기(義勇實記)》가 전한다.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