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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임시정부 마지막 청사 ''''경교장'''' [백남우 칼럼]
작성자 admin 작성일 2020-04-21

 

남우 tbsTV 영상콘텐츠부장  승인2020.04.20  수정2020.04.20 18:52

 

 

임시정부 마지막 청사 ''''경교장'''' [백남우 칼럼]

 


 

미디어파인 칼럼=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경교장경교장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주석이던 백범 김구선생이 194511월 중국에서 환국한 이래 서거로 생애를 마칠 때까지 생활하던 사저이다. 일제강점기 1938년 금광으로 돈을 번 금광업자 최창학이 소유하다가 해방 후 친일 행위에 대한 속죄 차원으로 임시정부 관저로 제공했는데 원래 이름은 일본식 마을 이름을 딴 죽첨장(竹添莊) 혹은 죽첨정(竹添町)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김구 선생이 근처에 있던 경교[京橋: 경구교(京口橋)의 약칭]라는 다리 이름을 따서 경교장이라 개명하였다.

 


 

194511월 임시정부 국무위원들과 함께 귀국한 김구는 1949626경교장 2층 집무실에서 육군 소위 안두희(安斗)의 흉탄에 의해 암살되기까지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건국에 대한 활동 및 반탁, 통일운동을 이끌었다. 김구가 반탁,건국,통일운동을 주도할 때에는 흔히 서대문경교장이라고 불렸으며 민족진영의 집결처로 이용되었다.

 


 

김구 선생이 서거한 이후는 다시 최창학에게 반환되었고 타이완 대사관저로 사용되다가 6.25전쟁 때에는 미국 특수부대 시설로, 휴전 후에는 베트남 대사관저로 사용되는 등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뀌었다. 1967년에는 삼성재단이 매입하여 강북삼성병원 본관으로 사용되어 오다가 서울시에서 소유는 그대로 두고 전체 공간을 복원하기로 합의해 임시정부에서 사용하던 당시의 모습대로 재현되었다.

 

당초 200146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29호로 지정되었으나 한국 근현대사에서의 경교장의 중요성이 재평가되면서 2005613일 국가 지정문화재 사적 제465호로 승격되었다. 2009814일에는 60년 만에 경교장 전체를 복원하기로 하여 건물 내에 있던 병원 시설들을 모두 옮기고 20113월부터 공사에 들어가  3년여의 복원작업 끝에 201331일 역사적 옛 모습이 공개되었다. 경교장은 설계도면이나 사진자료가 그대로 남아있어 완벽에 가깝게 복원에 성공했다.

 

 

 

건물은 건축면적 396.69㎡, 연면적 945.45㎡(지하 1, 지상 2) 규모로 1930년대 근대건축 성숙기의 면모를 잘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 근대 건축의 개척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기록되고 있는 김세연(1897~1975)씨가 설계했는데, 당시 유럽을 흠모하는 일본 귀족들이 즐겨 짓던 유럽 스타일의 일본식 양옥이다. 단아한 2층 양관(洋館)으로 전면 분할의 비례가 아름다우며, 1층의 좌우창을 원형으로 돌출시켰고, 그 상부를 의장(意匠)의 중심체로 하였다. 현관 2층 부에는 6개의 붙임원주를 사용하여 5개의 들임 아치창을 냈다. 1층은 테이블과 소파, 의자를 사용할 수 있도록 서구식 구조로 구성되어 있는 반면에, 2층은 일본식 다다미방을 복도 양쪽에 배치했다.   

 


 

임시정부 주요 요인들의 거처이자 임시정부 청사로서 여덟 차례의 국무 위원회가 열린 곳. 그리고 신탁통치 반대 운동의 중심지로 1949년 이 건물 2층에서 김구 선생이 흉탄으로 순국하기까지 경교장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로서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모체였다. 단아하게 복원된 경교장 안에서 백범 김구 선생의 죽음을 유일하게 기억하고 있는 집무실 유리창이 당시의 상흔을 떠올리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