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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밀정처단·교민보호"…임정 첫 경무국장 김구선생 민주경찰 원조
작성자 admin 작성일 2020-08-14

 news1(서울=뉴스1) 이승환 기자 | 2020-08-14 07:03 송고 | 2020-08-14 09:36 최종수정

 

"밀정처단·교민보호"…임정 첫 경무국장 김구선생 민주경찰 원조

경찰청 발간 참경찰 인물열전…상해임정 초대 경무국장
광복 뒤 "민주경찰" 창간호에 기고…경찰상 제시


제74주년 8.15 광복절을 이틀 앞둔 13일 서울 중구의 한 갤러리에 장영우 작가가 돌 위에 그린 애국지사 
백범 김구 선생, 안중근 의사, 도산 안창호 선생의 초상화가 전시돼 있다. 2019.8.13/뉴스1 ⓒ News1 민경석 기자


본관은 안동이며 호는 백범(白凡)이다. 김구 선생(1876년 8월 29일~1949년 6월 26일) 얘기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지도자 김구 선생을 모르는 이가 있을까. 그러나 그가 "경찰관"이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김구 선생은 "1호 민주 경찰관"이자 "경찰청장" 에 해당하는 "경무국장" 을 역임했다.

◇참경찰 인물열전…초대 경무국장

 
14일 경찰청 자료 "참경찰 인물열전"을 보면 김구 선생은 임시정부 초대 경무국장(1919~1923년)과 의경대장(1932년)을 지냈다.

임시정부 경무국장은 지금으로 치면 경찰 조직 수장인 경찰청장이다. 당시 그만한 경찰 총수감이 없었다는 게 경찰 관계자들의 

공통된 말이다. 

김구 선생은 1919년 3·1 운동 직후인 4월 임시정부가 수립된 상하이로 망명했다. 일본 통치에 조직적으로 저항하기 위한 기관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결정한 일이었다. 김구 선생을 비롯한 애국지사들이 상하이에 집결해 임시정부를 조직하기로 했다. 

그해 4월 21일 김구 선생은 제2회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회의에서 의원으로 당선된다. 동시에 독립운동가인 신익희·서병호 선생과 
함께 내무부 위원으로 선임된다. 내무부 위원은 최근 기준으로"중앙부처 차장급"이다. 임시정부를 수호하고 상하이 교민사회의 
치안을 책임지는 역할을 맡았다.


김구 선생은 8월 12일 경무국장에 임명된다. 경무국 사무실은 도산 안창호 선생이 미주에서 마련한 자금으로 임대한 임시정부 청사의

1층에 자리 잡았다. 청사 2층 복도 한쪽에는 경무국 소속 경호원 20명이 정복 차림으로 근무했다. 서대문구 미근동에 있는 경찰청 본사의

모태가 된 모습이다.

◇사이비 독립운동가 색출…동포 안전·재산 보호    

김구 선생은 정복·사림 차림의 경호원을 거느리며 업무를 시작했다. 당시 상하이에는 독립운동가를 사칭하고 교민들에게 자금 제공을 

강요하는 범죄가 기승을 불렸다. 요즘 같으면 공무원 자격 사칭죄나 사기죄가 적용될 만한 범죄다. 

경무국은 사이비 독립운동가를 색출해 동포들의 안전과 재산을 보호했다. 임시정부와 교민단이 주최하는 각종 행사와 집회의 안전도 
유지하고 경비했다. 말 그대로 경찰의 임무를 수행한 셈이다.


가장 중요한 임무는 "밀정 처단"이다. 김구 선생의 자서전  "백범일지"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온다.


"혁명 시기이자 비상한 시기였던 만큼 일본 밀정 등 범죄자에 대해서는 말로 타이르는 것이 아니면 사형이었다."

간첩 활동을 하는 친일파를 사형으로 단호하게 대처했다는 뜻이다. 시대 상황상 경무국이 사법부의 역할까지 했다는

점을 짐작하게 한다.

실제로 경무국이 독립운동을 저해하거나 방해한 밀정들을 처단한 사례가 백범일지에 구체적으로 기록돼 있다.

김구 "경무국장" 은 특히 활빈당 교살 방식을 경호원들에게 훈련시킨 뒤 밀정 처형에 응용하도록 했다.
 
"참 경찰 인물열전" 에는  "김구 선생이 105인 사건(조선총독부가 민족해방운동 탄압을 위해 데라우치 마사타케 

총독의 암살미수사건을 조작해 독립운동가 105인을 감옥살이시킨 사건)으로 서대문 감옥에서 옥살이하던 중 

활빈당수였던 김진사로부터 배신자 처리 방법과 경험을 배워 경호원들에게 전수했다"고 적혀 있다.

경찰 조직화를 도모한 점도 눈에 띈다. 김구 선생은 1923년 내무총장으로 취임하면서 대한교민단의 경찰조직인 

의경대 설치를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1923년 말 자치권이 있는 교민단의 사업 차원에서 의경대가 구성된다. "자치경찰"인 셈이다. 김구 선생은 지난1932년

1월 11일 교민단 제1차 정무위원회에서 의경대장으로 임명되며 교민단 단장과 의경대 대장을 겸했다. 

의경대장 재임 시절 상하이 교민 사회 질서유지·반역자 교정, 호구조사·민단세 징수·풍기단속을 지휘했다. 교민사회에 

침투한 친일파를 색출하거나 처단하는 일도 지시했다.

◇"신 경찰이 돼라"…"경찰 정신의 뿌리"

하루만 지나면 광복 75년이 된다. 1945년 8월 15일 한국은 일본의 강제점령에서 벗어나 자주 독립한다. 김구 선생은

광복 2년 뒤인 1947년 6월 경찰 교양지 "민주경찰" 창간호에서 "자주독립과 민주경찰" 이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한다.  

그는 해당 글에서 "애국 안민의 신(新) 경찰이 돼라"고 당부한다. "국민을 위한 민주경찰"이 돼야 한다는 의미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10월 25일 서울 용산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경찰의 날 73주년 기념식"에서 축사했다.
매사에 자주독립의 정신과 애국안민의 척도로 임하라는 "민주경찰" 창간호에 기고한 김구 선생의 당부는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경찰 정신의 뿌리가 됐다"고 강조했다.


경찰은 66년 숙원인 수사권 조정의 후속 작업인 자치경찰제 도입과 국가수사본부 설립 등 국민적 지지가 필요한

개혁 과제를 앞두고 있다. "민주경찰 1호" 김구 선생의 메시지는 유효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경찰 관계자는 "1919년 8월 12일 김구 선생이 임시정부의 초대 경무국장으로 임명되면서 임시정부 경찰이 
실질적으로 구성됐다"며 "이 같은 배경을 고려하면 김구 선생은 우리 역사상 "1호 민주경찰"이 된다"고 말했다.